로마

2019. 3. 24. 23:53 from 현재의 영화이야기



"그래비티"로 영화를 보고, 느끼는 수준에서 체험의 경지로 올려놓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차기작을 모두들 궁금해했다. 그런 그가 택한 것은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자전적인 흑백영화였다.(로마는 멕시코의 어느 지역을 의미한다.) 더구나 넷플렉스 플랫폼을 통해서 선보였다는 점도 꽤 화제였다. 


시작부터 거의 몇 분에 달하는 롱테이크로 시작하고 2시간 15분인 러닝타임을 모두 흑백으로 채운 이 영화를 스튜디오와 제작비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다면 넷플릭스만 한 플랫폼은 없었을 것이다. (나중을 위해 디지털 컬러로 찍고 흑백으로 보정해서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예 그냥 흑백필름으로 찍었다고 하니 제대로 맘대로 찍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역시 대중적인 기호와는 다른 이 고집스럽고 불편한 영화가 개인적으로는 "그래비티"보다 훨씬 좋았다. 


이 영화는 결국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여성, 모성에 대한 헌사와 따듯한 시선 그리고 응원이다. 감독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자신을 키워준 멕시코계 유모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성들은 허세 가득하고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남성성은 어느 의미에서는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역사와 괘를 같이한다. 폭력적이고 허울뿐인 역사와 남성 속에서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보살피고 삶을 살아내는 것은 여성, 어머니이다. 이는 신분의 높고 낮음, 부의 경중에 따라서 다르지 않다. 더구나 남성에 의해 입은 그녀들의 상처들은 가해자인 남성을 통해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여성, 그리고 아이들의 연대, 사랑을 통해 치유된다. (아마도 이 부분은 세계 모든 국가들의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마지막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바닷가 장면은 그래서 영화 사상 매우 상징적이고도 울림이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해석은 여러 가지 일 수 있겠지만 영화의 처음, 중간, 마지막에 등장하는 저 높은 하늘의 비행기는 아마도 그녀들이 이루지 못한 자유,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 와이프, 그리고 자라고 있는 두 딸과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위대하게 느껴지고 미안함이 들게 하는 영화다. 


어쩌면 올 해 본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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