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원칙과 관용 이 개념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절대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을 가진 특정 집단의 정체성으로, 행위에 대한 당위성으로 기능하면서 상대적인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개념은 상호 배타적인 양 극단의 것들로 치부되기에 그 자체로 편을 가르는 잣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진보, 원칙/관용은 옮음, 정의, 발전 등과 같은 긍정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그냥 다른 방법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옮음/틀림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두 교황을 보면서 이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이 영화는 세속적으로 서로 반대 집단, 적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는 카톨릭에 봉헌하고자 했던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다른 방식의 두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는 이야기적으로는 특별한 것이 없다. 카톡릭의 계속된 비리와 성추행 범죄로 자신 사임을 결정한 베네딕트 16세가 (이후 후임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를 교황청으로 초대해 종교와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하지만 두 교황의 대화와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도 인간적인 고뇌와 번뇌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항상 옮음을 추구하고자 노력했음을 알게 된다.
캐릭터 적으로는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프란치스코에 아마 많은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고 주인공 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베네딕트 16세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조금 더 헌신적인 종교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과거의 프란치스코가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군부독재에 협력한 유연함을 보였다면 같은 상황에 베네틱트 16세가 처했다면 원칙을 붙들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어느 것이 옳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가 점점 정치적 파국으로 치닫는 요즘 대한민국에 매우 큰 울림을 주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베네딕트 16세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와 프란치스코를 연기한 조나단 프라이스의 연기와 앙상블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덧. 베네딕트 교황이 자신 사임을 하게 한 카톡릭 교구의 성추행을 밝히는 보스턴 글로브의 이야기를 다른 스포트라이트도 명작이니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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