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명성은 자자했는데 이제야 봤다. 믿고 보는 제작사인 "워킹타이틀"의 작품답게 그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이란... 더구나 "게리 올드만",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하디", "존 허트"까지 최고의 영국 배우들까지 모아두니 "미션 임파서블", "007" 등의 스파이물은 어린이 수사물로 보이게 하는 착시까지 일으킨다. 

 

이 작품은 스파이물이지만 그 흔한 카체이싱 장면도 없고, 현란한 격투 장면도 없고, 총격전도 없다. (기억으로는 세 발의 총격이 전부) 전형적인 액션 씬들은 전부 거세되고 거의 대부분의 화면을 정보국 사무실과 사무실 용도로 쓰는 호텔과 등장 인물의 집으로 채워 넣고 있다. 증거 수집 또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복잡한 작전을 짜고 이에 대한 실행을 주 내러티브로 활용하는 일반적인 스파이물과도 다르게 그냥 주인공인 "스마일리"의 사유와 기억, 등장인물의 대화에 집중한다. (스마일리는 정보국 요원이기보다는 철학자나 학자에 더 어울려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스파이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인 긴장감을 놓치기는커녕 그 팽팽함에 몰입은 극에 달하고 추리물로서의 지적 유희도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 작품의 이야기, 미장센, 연기의 합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 그 톤이 너무나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눈이 즐겁다. 1970년대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스파이물의 근원인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또한 그 품격을 더한다. 디지털화 된 최첨된 기기들과 차량이 등장하는 최근의 블럭버스터 스파이물에 대해서 "얘들아! 그 말도 안 되는 판타지 같은 가짜 이야기는 진짜가 아니야. 스파이물은 냉전 시대를 다루는 이게 진짜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실로 영국, 워킹 타 이블스럽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내내 가슴 한켠에 남는 것은 "쓸쓸함"이다. 이 영화는 서로 속이고 속는 속성을 다루는 스파이물이지만 관계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전우들이기도 했고 최고의 친구이기도 했지만 냉전시대, 정보국에 속한 그들은 이중첩자가 되고, 서로를 의심하고, 동료의 부인을 이용한다. 적국의 일급 정보를 가진 여인을 사랑하게 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동성 애인을 떠나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한때 소련 정보국의 수장 격인 칼라와 스마일리는 서로의 진심을 기억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눈을 아주 높게 들어 보면 이들도 보통의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단점은 정작 본인은 이 영화가 끝인데 속편으로 양산되는 앞으로 나올 걸출한 스파이물의 리얼리티를 현격하게 저해해 몰입을 방해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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