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타란티노가 칸에서 펄프픽션으로 그랑프리를 받았을 때 세상은 타란티노에 열광했고 그의 새로운 스타일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분명 그 평범하지는 않은 영화, 펄프픽션은 그렇게 화려한 데뷔를 했다. 하지마 난 그것이 뭐 그다지 대단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가 이벤트가 전부가 아닌 이상... ...
타란티노의 영화적 문법은 기존의 영화적 문법과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그 파장은 일파만파되어 세계 신영화인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먼저 그의 영화를 난 관객과의 대화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이끌고 관객을 스크린에 몰입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처음 거사를 모의하고 멋지게 걸어가던 갱은 다음장면 에서 피를 흘리며 절규하고 도피하고 있다. 그 엄청난 점프컷!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펄프픽션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시간적인 인과구조를 전부 무시하고 조금씩 조금씩 관객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며 끝없이 관객을 이끌고 조롱하고 있다. 만약 타란티노의 그 이야기들을 시간적인 인과관계로 플어서 보여주었다며 뭐 그것이 그렇게 대단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기존의 질서의 해체와 실험에서 그는 성공했고 그를 통해 신세대 영화인들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냄세는 세계 영화의 곳곳에 숨어있다. 하지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타라티노가 작가인가? 그렇게 인정해야 하는가? 하지만 난 그 질문에 아니다라는 결정을 본다. 그는 작가는 아니다. 스타일리스트이다. 어쩌면 우매한 내가 그의 작품들속에서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타란티노를 작가라고 부르기는 왠지 좀 켕긴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는 작가보다는 스타일리스트가 각광을 받고 있는 듯 싶다. 왕가위가 그렇고 이명세가 그렇다. 뭐 스타일리스트와 작가와의 관계도 모호하지만 하지만 난 영상적인 감각은 떨어지지만 이창동 같은 작가가 좋다. 일관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그리고 치열하게 하는 그가 좋다. 난 고루한가?
펄프픽션 이야기를 써야 되는데 막 쓰다보니 감독평이 되어버렸네요. 요즘은 과연 그런 생각이 듭니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은유도 그리고 세기적인 메세지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가 너무 개인의 예술적 창작물을 대중과 결부시키는 것인지... ...
2000년 5월 15일에 작성한 글. 타란티노는 싫어하면서 왕가위는 좋아했던 그러면서도 이창동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무엇인가 일관성이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레인스포팅: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은 있다. (0) | 2009.06.16 |
---|---|
세익스피어 인 러브 (0) | 2009.06.04 |
식스센스 (2) | 2009.06.04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으로... (0) | 2009.05.27 |
색정남녀: 우리들의 이야기 (0) | 200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