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안 읽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더는 봉준호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모성이라는 강력한 감정을 이용해 전체 흐름을 끌어가는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했다. 스릴러 장르에 수반되는 고유의 장치나 기교들을 사용해 장르적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깊은 감정이입 혹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 감정을 이용해 봉준호식의 스릴러를 탄생시켰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더는 장르적 재미와는 전혀 무관하게 우리들이 외면했거나 당연하게 여겼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도 냉정하게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살인의 추억도, 괴물도 결국은 지극히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던 영화가 아니였던가.



결국 이 영화는 제목처럼 어머니, 모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머니, 모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따뜻함, 애잔함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상식, 더 나아가 법률 조차도 무의미하게 여겼던 우리들의 어머니, 어떤 순간에는 정상적인 것과 거리가 먼 행동을 했던 어머니, 자식에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다크사이드 버전쯤 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배우 김혜자의 캐스팅은 그 자체로 영화의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혜자는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이상적인 어머니 모델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출연한 대부분의 드라마를 통해서 굳어진 이미지이며 김혜자가 어떤 역할을 맡던지 기본적으로 이상적인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마더를 보면서도 계속 드라마 속의 김혜자를 떠올릴 수 밖에 없고 어머니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들을 계속 투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마더에서 김혜자가 연기한 어머니는 지극히 현실적인 어머니, 더구나 현실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생의 가장 큰 사건 앞에 선 어머니였다. 그 두 개의 어머니에 대한 갭은 너무도 커서 혼란과 어색함,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이상향의 어머니가 아닌 척박한 현실 속의 어머니를 두드러지게 한다. 왜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는 김혜자가 없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 했는지 알 것 같다. 영화 밖 현실의 이미지와 영화 속 만들어진 이미지를 배우를 매개로 결합시키고 있다.

 



영화 속에서 김혜자는 자신만의 법칙과 룰로 세상을 살아가고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 모습은 일반적인 상식과 정상적인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녀가 검증되지 않은 약을 조제하고, 침을 놓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녀가 이러한 삶의 법칙을 택한 이유도 함께 자살하려고 했던 자식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의 어머니들도 다 그렇지 않은가? 자식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으로 자꾸 정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누명을 썼다 생각하는 자식을 위해 치열하게 단서를 모으고 사건을 추적하는 그녀, 자신의 자식이 평균 이하라는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모습 또한 우리들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 앞에서도 인정할 수 없는, 새로운 불리한 상황을 결국 살인으로 묻어버리는 모습, 대신 누명을 쓴 누군가의 아들을 보면서 양심과 자식에 대한 사랑 앞에서 지옥 같은 갈등을 하지만 결국 자신만이 아는 혈에 침을 놓아 면죄부를 놓는(모든 어머니는 나름의 검증되지 않은 자신만의 치유 방법이 있다) 행위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부모로서는 이 모습 앞에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고, 자식 입장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세상을 살았을, 살아왔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상식이나 법이라는 가치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자가 더 중요하겠지만 우리들 중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우리들의 어머니가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여린 자신의 자식이 살아가기에 이 현실은 너무 사납고 거칠기 때문이 아닐까?


 


마더
감독 봉준호 (2009 / 한국)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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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