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영화 관련해서 썼던 글을 정리했다. 한 때는 꿈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열혈 영화 마니아도 못 되는 상황에서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그냥 그렇게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 온 시간 동안 영화 관련해서 글을 썼던 작업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꽤 큰 의미로 남아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정확히 반대편쯤에 있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함께 알게 해 주었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글로써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있어서 그나마 대놓고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주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온라인 상의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 그들의 수많은 의견, 반론 들은 나의 생각을 살찌웠고, 더 노력하게 했고,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시간이 날 때 천천히 해야지 하면서 꽤 오랜 시간 끌어오다 그래도 힘내서 정리했던 이유는 나에게는 새로운 영화세계를 알게 해준, 순도 100%의 이상을 위해서 현실과의 타협은 단 1%도 없었던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기도 했다. 5년이 넘게 보지 못했고, 그 시간 동안 연락을 한 것은 몇 번 되지 않아 추억 같은 형이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꼭 그 형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은 많았었고 왠지 모를 미안함을 또 갖게 했던 형이기도 했다. 결국 한번 보자는 항상 하는 무책임한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형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예전 글들을 정리하며 다시금 잊고 있던 영화를 떠올리고 싶었다.

 

정리는 항상 그 다음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 단계가 되어야 하지만 솔직히 그 다음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처럼 영화를 치열하게 보기도 힘들 것이며, 더욱 영화 글을 쓴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형이 시작했고 내가 나름 성장시켰지만 이제는 거의 존재의 의미가 없는 동호회도 어떤 식으로든 부활시켜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시간과 열정이 참 모자란다. 나이가 들면 삶의 목적들이 굉장히 단순해 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목적들은 더 많아지고 명확하지도 않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는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나의 내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역량의 50%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영화에 빚져있다 생각한다. 다시 생각하면 영화를 통해 많은 고민을 하고 그 고민들을 하나의 글로 정리하거나 다른 이와 의견을 나누는 것은 또 10년 후의 나의 성장에 튼실한 무엇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엇보다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생각한다.

 

다양한 목표를 다 잘할 정도로 능력이 있지도 않고,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들이 많아서 다짐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나의 블로그를 열고, 10년의 기록을 정리하고 또 앞으로 하나 하나 채워 나가보려 한다.

 


예전 러시아에서 귀국한 형이 소집한 운영진 첫 모임이 내내 기억난다. 다들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하나라도 더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허름한 여관방을 빌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아침에 여관을 나설 때 거짓말처럼 기분 좋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인생의 씬들 중 나에게는 꽤 강렬하게 남아 있는 순간이다. 내내 그 순간이 그립다면 작게라도 영화와의 소통을 놓아서는 안될 것도 같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