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드라마에서 나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시청률이라는 절대절명의 기준에 의해서 어떤 드라마는 할 이야기를 다하지 못하고 조기종영되기도 하고 어떤 드라마는 어거지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를 보느냐가 해당 드라마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드라마에서는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기존의 드라마와는 다른 형식을 갖거나 인지도가 없는 배우들을 출연시킨다거나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 동안의 흥행드라마의 요인들을 분석해서 그 요인들을 삽입하고, 될 수 있으면 인지도가 높은 흥행배우를 캐스팅하고,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불륜 드라마가 3사 공히 제작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고 사극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자 3사에서 거의 동일한 컨셉의 드라마를 내놓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물론 침대에 누워 혹은 쇼파에 기대어 리모콘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보게 되는 드라마는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익숙한 재미만이 있을뿐이지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종의 트렌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주중 미니시리즈는 어느 정도 눈에 뻔히 보이는 그리고 예측이 가능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시간이 맞아서 드라마를 보게 되지 찾아서 보게 되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그런데 가끔은 가뭄에 콩나듯 신선함과 재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드라마를 발견할 수는 있다. 김종학 감독의 <5>, <인간시장>,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가 나에게는 그랬고 몇 년 전에는 노희경 작가의 <거짓?gt; <바보같은 사랑>이 그랬으며 가장 트랜디 하면서도 맛깔나는 <해피 투게더>가 그랬다. 그 후에는 정말 맛깔나는 신선한 드라마를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요즘 세 젊은이의 애정행각이 참으로 맛깔난다.


<네 멋대로 해라>... 이 드라마를 간혹 보면서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왠지 모를 신선함이 물씬 풍기는 이 드라마의 칭찬을 조금 하고 싶어진다.  이 드라마는 고복수, 전경, 송미래라는 세 젊은이의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주변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일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세 젊은이의 캐릭터다. 대부분의 삼각관계 혹은 사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남, 녀는 정말 지고지순하고 흠잡을데 없는 순수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의 다른 축을 이루는 주인공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악녀, 악당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고복수, 전경, 송미래는 어느 누구도 악인이 아니다. 세 주인공 누구에게나 감정이 이입되고 서로간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다른 이의 애인이나 정말 사랑하는 전경의 입장이나, 전경을 사랑하지만 미래에게도 너무나 미안한 복수의 입장도, 가족과 같이 복수를 사랑하는 미래도 우리는 각자의 입장을 이해한다. 마치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처럼 모든 주인공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드라마의 줄기는 어느 쪽으로 뛰어갈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선택을 하게 되던 다른 쪽의 선택의 가능성을 우리는 아쉬워하기도 한다.이러한 특별한 캐릭터는 양동근과 이나영 공효진의 멋진 연기에 의해서 형상화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짜여져 있다기 보다는 그냥 툭툭 내뱉어진다. 특히 양동근의 경우에는 모든 대사가 애드립인 것 같아 고복수가 양동근인 것 같은 양동근이 고복수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중에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 술을 먹고 취한 전경은 송미래의 사무실 벽에 송미래 바보! 복수는 내꺼! 송미래 꽝! 인가 하는 낙서를 남긴다. 이를 본 송미래는 전경을 불러 그 벽을 닦게 한다.전경은 와서 그 벽을 청소하고 있고 송미래는 옆에 서 있다. 그리고 전경은 복수에게 이와 같은 술주정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미래는 말을 한다고 하다가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술주정을 말해도 복수는 귀여워 죽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래는 복수가 남자가 아니라 가족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말에 전경은 자신은 없지만 좋아하지 않을려고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둘은 같이 벽에 낙서를 지운다. 상황은 무척이나 우습고 살벌한데 그 둘은 자신이 복수를 사랑하듯 상대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기에 미워하면서도 서로를 좋아한다. 전경과 미래의 관계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서로를 죽일듯이 하다가도 서로의 진심을 알기 때문에 또 서로를 배려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사랑하는 복수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표피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네 멋대로 해라는 그 이면에서 담긴 진심을 황당한 에피소드와 참신한 대사로 풀어내고 있다.

 



밝은 트랜드 드라마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의 정조가 가득 배어있다. 고복수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가 펼치는 재미있는 사건들도 그 안에는 묘한 슬픔이 깃든다. 계돈을 날린 어머니의 발을 주물러주며 돈 벌어다 줄 것을 약속하는 복수를 보는 것은 그래서 찡한 감동이 있다. 복수의 행동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에는 그렇게 슬픔과 안타까움의 정조가 배어있다. 잘 진행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시한부 인생으로 주인공을 죽이며 뻔하게 종결되는 드라마와는 달리 네 멋대로 해라는 초중반에 주인공의 죽음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그를 통해서 전체적인 감정선을 만들어내서 진행하고 있다.같은 뇌종양으로 주인공을 죽여도 네 멋대로 해라는 이렇게 다르다.

 

그와 같은 메인 골격에 부수적으로 복수와 그의 아버지인 고중섭의 관계 어머니인 정유순과의 관계를 통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전경과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전경의 오빠인 전강과 그의 실제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진행된다. 가족에 대한 규정은 미래와 복수의 관계에 의해서도 변주되어 진행된다. 동생과 둘이 살아온 그녀에게 복수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남자가 아니라 한 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복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집착하는 것 또한 복수가 그녀에게는 가족과 같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가족을 사랑의 완성을 위한 장벽으로만 그리고 있는 것에 반해 네 멋대로 해라는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전과자인 복수의 이야기를 통해 전과자 혹은 소외 받은 이에 대한 이야기도 조심스레 꺼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뻔한 그리고 단일한 컨텐츠로만 채워진 드라마는 싫어한다. 그런 점에서 네 멋대로 해라는 단순한 삼각관계를 넘어 진정한 사랑과 가족 그리고 소외된 자들을 이야기함으로써 풍성한 컨텐츠를 가진 튼실한 드라마가 되었다. 예전에 유희열이었던가? 라디오프로그램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음악을 듣는 사람은 대부분 그 음악의 멜로디라인을 무의식적으로 예측하는데 예측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음악은 쉬이 실증을 느끼게 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되는 음악은 다시는 듣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음악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인 멜로디라인을 타야 한다고 했다. 음악의 경우지만 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네 멋대로 해라의 경우에는 우리가 익숙한 트렌드 드라마의 형식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참신한 형식들로서 변주함으로써 맛깔나는 드라마가 되었다.


2002년 8월 10일 작성한 글: 이 드라마 보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