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감 중에서 거세되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감각은 무엇일까? 아마 각자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각각의 감각을 들며 그에 걸맞는 이유들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장애를 갖고 경중을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유치하고 무의미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난 시각의 상실이 가장 고통스럽고 두렵다. 따지고 보면 공포영화의 여러 형식들 중에 가장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감독은 뻔이 아는 공포의 장치들을 우리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공포스러우며 공포의 대상을 확실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공포스럽다. 때로는 영화를 보는 관객은 공포의 대상을 보고 주인공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더한 공포를 체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각의 제한 혹은 상실은 공포영화의 가장 근원적인 그리고 강력한 기재로 작동한다고 볼 수도 있다. 디 아이의 공포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주인공인 문은 두 살 때 시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그녀는 안구기증자를 통해 세상의 빛과 조우하게 된다. 그녀는 두 살경부터 지금까지 촉감과 소리로 사물을 인식했기 때문에 새롭게 모든 사물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즉 그녀에게 시력을 통해서 보는 모든 사물과 형상들은 아주 새로운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 이상한 현상이라는 것이 망자들과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는 것이다.  망자가 특정인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설정이 아니다. 그 유명한 <식스센스>에서 벌써 전세계적으로 팔아먹은 설정이며 악령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혹은 우회해서-무당이나 점성술사-악령을 보는 누군가는 존재했다.

 

최근에 개봉된 13고스트에서는 과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한 고글로서 악령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아이의 설정이 꽤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다>의 상태에서 <남이 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보는>설정으로 바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두 살때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시력을 통한 세상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런 그녀가 시력을 되찾지만 죽는 망자들이 보인다. 촉감과 소리로써 사물을 인식했던 그녀에게 새롭게 생긴 시력을 통해서 보게 되는 망자들은 그녀에게 어떠한 의미로 인식될 것인가? 이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실제로 그녀가 혼자 서서히 만나게 되는 망자들은 꽤 공포스럽다. 아버지의 서예교실에서 주인공인 문에게 달려드는 귀신이나 음식점에서 혀로 고기를 핥아먹고 스르르 사라지는 귀신 엘리베이터에서 그리고 자신이 교통사고로 죽었음을 모르는 소년은 꽤 공포스럽다. 이 영화에서 문의 특수한 시각에서 오는 공포의 백미는 당연 엘리베이터씬이다. 얼굴의 반쪽이 없는 귀신이 엘리베이터 구석에 서 있다. 오직 문에게만 보인다. 문은 그 귀신을 보고 얼어붙어버리지만 한 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다시 문이 탄 엘리베이터에 스스르 나타나는 귀신... 볼 수 없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를 넘나드며 영화는 공포를 선사하고 이를 보는 우리는 차라리 계단을 사용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서서히 주인공인 문이 자신에에 벌어지는 알 수 없는 현상을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공포를 쫓기 시작하며 이 영화는 지루함속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은 흡사 히데오 감독의 <>과 동일하다. 즉 안구기증자인 소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과정은 저주를 풀기위해 비디오테입에 담긴 한의 주인공을 찾는 과정과 동일하다. 하지만 링이 절대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공포로서 영화가 끝난 후에 더 큰 심난함을 안겨준 것과는 달리 디 아이는 안구 기증자인 소녀의 한의 소멸에서 정지한다. 그렇지만 이후 관객에 대한 서비스를 잊지는 않는다. 소녀가 자살을 결심한 것과 동일한 상황을 문에게도 던져주고 이후의 대폭발 장면을 우리게게 선사한다. 망자를 데려가는 검은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죽음의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문에게 수 많은 망자들이 옆을 스쳐간다. 꽉 막힌 도로의 앞에서는 사고가 난 가스수송차가 넘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 가스차는 폭발할 운명이다. 소녀와 마찬가지로 문은 사람들을 대피시키려 하지만 예정대로 가스차는 폭발하고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문은 다시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마치 처음부터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진행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팡형제의 디 아이는 기존의 설정들 망자가 보인다는 설정을 갖고 왔지만 시력을 통한 세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며 나름의 참신함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예측가능한 네러티브선을 가져가면서 다소 실망스러운 끝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때깔나는 화면들과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기교들과 설정등은 팡형제의 가능성과 CF감독 출신이라는 이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철에서 문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아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뒷면 유리창에 귀신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꽤 재기발랄하면서도 귀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타이의 영화계는 새로운 증흥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과거 아시아의 맹주였던 홍콩은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그 두 나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팡형제와 진가신감독의 결합은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쓰리>라는 삼개국 출신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의 기획을 한 진가신을 떠올리니 그는 새로운 아시아 영화에의 도전을 호기롭게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공포영화를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렸다. 얼마나 무서운가? 적어도 이번 여름에 본 영화들 중에서는 디 아이가 중반까지는 가장 무서웠다.^^

2010년 8월 17일 쓴 글: 내 기억으로 프로젝터 연결해서 연구실에서 봤었던 것 같은데...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