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던가 접속과 함께 멜로가 한국의 하나의 흐름이었던 적이 있다. 그 후로 편지,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약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하지만 난 그 멜로를 편지 이후로 보기를 그만 두었다. 시류에 편승한 이벤트적인 영화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군대를 갔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특히 여자들 중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생애 최고의 영화로 꼽는 이가 많았다. 궁금했지만 그래도 내 고정 관념을 깨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영화의 이해 강의 중에 잠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적이 있었다. 순간 난 놀랐다. 내 볼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

 

절제된 하지만 텅빈 그래서 가슴에 남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적어보지만 역시 모자란다. 애석하게도... ...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매력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값 싸게 흘리지 않고 철저하게 절제하는 데에 있다. 편지를 보자. 한 없이 정형하 된 그리고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연기와 영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다르다.철저하게 슬픔을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한석규가 아버지에게 비디오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부분이나 수박을 먹던 한석규 동생이 순간 울먹일 뻔한 장면이라든지 영화 전체적으로 슬픔을 절제하고 있다. 그것은 순간 울고 순간 잊어버리는 편지와 약속의 것과는 다르다. 삶의 순간 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을 바라보며 한 방울 눈물흘리게 하는 두고 두고 가슴 속에 애잔하게 남아있게 한다. 만약 편지와 약속과 같았다면 병에 걸린 한석규의 사정을 알고 심은하가 안타까워 펑펑 울어대다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한석규가 죽었음에도 다시 영업을 하는 줄 알고 조금만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미소 지으면 돌아가는 심은하의 모습은 정말 너무 너무 안타깝게 한다. 또한 심은하가 보낸 편지를 한석규가 읽는 부분에서도 나래이션으로 처리 한것이 아니라 한석규의 빙긋 미소로 처리한 부분은 관객에게 더욱 큰 궁금증과 애잔함을 갖게 한다.


 

더불어 한석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심은하에 대한 시작되는 사랑을 한석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하는 것은 정말 그리 쉬운 일이 아닐진데 그 감정들을 단편적인 일상으로 예제와 시켜서 보여주는 것은 시나리오의 구성의 탁월함을 말하고 싶다. 이 처럼 영화는 내내 감정을 절제하고 관객의 몫을 많이 남기는 여백의 연출을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아주 고급스럽게 그리고 삶에 순간 순간들에 애조를 가지고 기억해내게 만들었다. 그 내재적인 감추어진 호흡과 스타일이 정말 놀랍다.

 

한석규가 마지막으로 심은하를 커피숍 창문으로 바라보며 창문에 손을 뻗는 부분은 정말 영화의 백미다. 그 장면만 떠올리면 자꾸만 아련한 그 무엇이 가슴에 뻑뻑하게 차오른다. 허진호 감독의 다음 작품이 정말로 기다려진다.


20007 15일에 쓴 글, 내 인생의 베스트를 꼽는다면 아마 들어갈 영화. 하지만 어느덧 이 스타일도 하나의 코드가 되어 버렸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