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운명이 있다. 아니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치부한다고 처도 죽음이라는 운명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죽음은 병에 걸려 죽을 날을 헤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주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절대 그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죽음이 당신의 목전에 있다면,당신의 죽음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계획이 이제 곧 실행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 그것은 절대 논외의 대상이 아니다. 절대절명의 어떻게 해서든 헤쳐나가야 한다. 어떻게든... ...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가 그 죽음을 피할 수 있으랴? 오직 그 죽음의 순간을 지연시킬 뿐... ...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은 그런 영화다. 일반적인 적이 정해져 있는, 가해자가 존재하는 호러가 아니다. 우리들의 운명이, 우리들이 언제인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 그 적이다. 그것은 절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피할 수 없다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이것이 데스티네이션을 신선한 호러라고 하는 이유였다. 물론 긴장을 풀고 아주 루스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몰아치는 구성은 탁월하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한 여성 관객은 버스씬에서 놀라더니 영화 끝날때 까지 신음을 멈추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영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영화속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한다면 데스티네이션은 분명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죽음은 사고사여야 한다는 명제는 이 영화를 아주 코믹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죽는 장면에서 난 맥가이버와 총알탄 사나이가 떠올라서 다른 사람은 신음을 지르는 와중에 혼자 실컷 웃었다. 호러를 보다가 그렇게 웃어본 적은 없는 듯 싶다. 역시나 가장 높은 점수는 소재의 신선함에 있다. 엑소시스트를 보고 그 소재의 신선함과 그 끝나지 않는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면 그것보다는 절대 못하지만 데스티네이션도 그러하다.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생명의 보존이라는 호러의 가장 절박한 사명이라는 점에서- 물론 여러 호러물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적이 아직 살아있음을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살인마나 악마가 아직 어딘가에서 주인공을 보고 깜짝 놀래키면서 끝나기 때문에... ... 하지만 생명의 보존이라는 희망도 준다. 이제까지 1편에서 잘 살아나왔는데 2편에서 그것이 뭐 어려우랴? 하지만 데스티네이션은 언젠가는 죽음에 도달하게 된다. 그 차이다. 또한 시퍼런 칼이나 도끼가 등장하지도 기괴한 괴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선하다. 쪼금... ...

 


엑소시스트 같은 정말 치떨리는 호러나 이블데드 같은 정말 웃긴 호러는 왜 안나오는걸까?

00년 6월 28일에 쓴 글. 논조가 무엇인지 참으로 모르겠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