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때였던가? 무한괘도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라는 곡에서 마지막 구절이 한동안 맴돌았던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당시에는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싶기도 했다. 나에게 후회없음은 바로 평균적인 시각에서 재단된 성공과 같은 의미였다. 어느 덧 유아적 사고를 조금 극복할 무렵에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통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목표로 살고, 또 그것을 이루고, 남들 보다 더 잘 벌고, 남들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가정을 꾸리고, 또 남부럽지 않게 자식들을 키워내고... 그렇게 살았을 때 난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 자신이 없었다. 바로 그 때 난 영화감독이 부러워졌다. 육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감독, directed by 다음에 오는 세글자의 이름이 박혀진 엔딩크레딧 그리고 영화는 영원할테니 말이다. 더불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한 메시지는 관객과 소통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 아마도 그 즈음부터 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것이 후회하지 않을 삶인지, 난 그 삶을 위해 훌륭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의지박약하고 가진 것 없으며 나약한 우리 모두는 삶속에서 헷갈려하고, 혹은 타의적인 힘에 의해 무의미하게 삶의 발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영화 (아바웃 슈미트)는 이러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보통의 기준으로 내달려온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서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슈미트는 보험회사 중역(부사장)이었지만 66살의 나이에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퇴직기념 파티에서 그는 불굴의 의지로 회사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한 가정의 완벽한 가장이었으며, 지인들에게는 다정한 친구이자 선배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퇴직 다음 날부터 그의 삶은 그야말로 무미건조하고 별다를 것 없는 노년의 일상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검증하기 위해 회사로 찾아가 보지만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일 뿐이다. 그러던 그는 구호단체의 광고를 보고 탄자니아의 한 소년 엔구두에게 돈과 편지를 쓰는 일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마저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제부터 슈미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그리고 여전히 그가 이 세상에 의미있는 존재임을 입증하기 위해 허덕댄다.

 

부인의 흔적을 더듬고 자신을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했는지 추억하던 슈미트는 부인과 친구의 불륜을 알아내게 된다. 더불어 그녀의 소중한 딸은 정체불명의 놈팽이와 결혼을 한다고 한다. 직장에서 그의 의미는 퇴직과 함께 사라지고, 그가 평생을 걸쳐 일구어낸 가정은 파괴되 버린 것이다. 딸의 결혼식을 막는 것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던 슈미트는 냉정하게 딸에게 거절당하고 결국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여행에서 그는 자신의 생을 여전히 미화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과 유성을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충만한 그는 딸의 결혼을 막기 위해 딸이 살고 있는 도시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그는 무기력하고, 그의 사랑하고 소중한 딸의 결혼을 그냥 지켜볼 따름이다.

 

 

 

그는 "내 삶이 이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켰던가.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주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명제를 거부해보고자 하지만 그는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도 못하고 만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슈미트는 엔구두에게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 편지안에는 자신과 손을 잡고 있는 엔구두의 그림이 들어있다. 그 그림을 보고 슈미트는 오열한다. 이제서야 비로소 슈미트는 자신의 삶에 아주 조그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어바웃 슈미트)는 보통의 기준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우리들의 이야기다. 자신의 평생을 던져 일구어낸 것이 파괴되어 가고 그와 함께 삶 또한 해체된다. 이 즈음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 해체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거나 억지로 자신의 삶을 미화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정도와 상황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어바웃 슈미트)는 다소 비관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잭니콜슨의 화려한 개인기와 씁쓸함이 베어나오는 웃음으로 통과하고 있다.

 
2003년 3월 16일에 쓴 글: 니콜슨 아저씨의 간만의 작업이라 좋았던 영화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