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단어의 뜻은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다. 그런데추억이라는 단어는 원래 단어의 뜻과는 다르게 어떤 감상이 포함된다. 추억이라는 단어로서 부를 수 있는 과거의 기억들은 대부분 현재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베어 나오는 것들이다. 당시에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현재 돌아보면 아름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고 명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의 신작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은 꽤 아이러니 하다. 살인은 설령 그것이 과거의 기억일지라도 추억이라고 명명할 수 없다. ‘살인의 기억혹은살인의 기록으로 되어야 꽤 알맞은, 앞뒤가 맞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되어서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살인의 추억인지, 그 제목이 얼마나 적절한지 절감하게 된다

많은 언론매체에서 소개되었듯 이 영화의 모티브는 1986년도에 발생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모티브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명이 강간, 살해되었고 30만명의 경찰이 투입되었으며 3천명의 용의자를 수사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아련한 기억 속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단순한 단어로서만 존재하는 이 사건의 개요를 접한 후 이런 엽기적이고 하드고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울 뿐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이 영화는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형사들을 보여준다. 사건현장의 보존은 되지 않고, 폴리스라인도 없으며, 수사방식은 주먹구구식이다. 이는 우리가 그간 영화 속에서 보아오던 형사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영화초반에 그 수많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바로 어처구니없는 형사들의 모습이다.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와중에서도 이 같은 행동은 계속된다. 증거조작과 강제자백, 육감을 넘어 점쟁이를 믿는 행동까지 그 모든 것이 희극적이다. 서울에서 자원해서 온 서태윤 형사의 투입으로 아주 기본적인 수사방식을 띄지만 서태윤 형사 또한 보통의 이지적인 형사물에서의 영웅은 아니다. 그 또한 박두만, 조용구보다 아주 조금 현명할 뿐이다. 극이 중반으로 넘어설 무렵 이 같은 희극적인 행동들은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하루 종일 사우나에서 용의자를 찾는 박두만이나, 발토씨를 끼고 용의자를 구타하고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는 조용구, 그리고 아이들에게 퍼지는 소문을 쫓는 서태윤 형사, 그들은 모두 범인을 정말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이 그 절실함에 대한 묘한 울림이 가슴에 퍼져간다. 어쩌면 그들의 그 모든 행동은 그 절실함에 대한 나름의 진지함이었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들이 태만하고 사건에 대해서 무심한 것이 아니다.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건 앞에서, 어떤 단서도 없는 사건 앞에서, 언론의 무능력에 대한 집중포화 앞에서, 혼란스러웠던 정치, 사회적 상황 앞에서 그들은 너무나 미약할 뿐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형사스릴러물처럼 사건에 따른 단서를 쫓으며, 범인과 형사들의 두뇌싸움의 지적인 영역에 걸친 영화는 아니다. 시대의 상황에 의해 잊혀져 갔던 엽기적인 사건에 대한 성토이기도 하고, 범인을 잡고 싶어 하던 형사들의 진한 집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파상풍에 걸려 다리를 잘라내고, 애인에게서 형사 일을 관두는 것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기고 하고, 범인을 잡고 싶다는 일념으로 자원해서 사건현장에 왔지만 결국 그들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 언론에서 일제히 다루어졌다는 듯이 잊혀졌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 다른 사업을 하고 가정을 꾸린 박두만 형사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건현장을 지나가던 중 잠시 차를 멈추고 당시의 기억을 회상한다. 그에게는 비록 자신의 실패에 대한 기억일는지 모르지만 추억일 것이다. 적어도 그는 살인자를 잡기 위한 형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건현장에서 그 사건은 자신만의 추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인자에게도 그 사건은 추억이다. 자신의 욕구를 분출시키던, 사회의 법제도와 치안을 뒤흔들었던 아주 짜릿한 추억인 것이다. 추억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살인이 추억과는 결코 묶일 수 없다는 우리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져간다. 분명 범인에게도 그것은 바로 추억이다. 젊은 날의 짜릿했던, 알싸했던 추억이다. 그에게 허락되어서는 안되는 추억을 선사한 것은 우리의 무관심과 망각일 것이다.

 


봉준호감독의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작년에 베스트로 꼽히던 시나리오에서부터 연출(누구나가 알 듯이 시나리오가 훌륭하다고 다 영화가 잘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송강호, 김상중의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 그리고 네러티브와 전체 색감, 극 전체의 구성까지 개인적으로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웰메이드 영화에 충실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공동경비구역 jas'가 오버랩되었다. 절묘한 웃음과 살아 숨쉬는 캐릭터. 적절한 반전과 긴장 모든 것이 '공동경비구역 jsa와 닮아있다. 물론 모든 웰메이드 영화가 나름의 울림을 갖는 것은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 나름의 퀼리티를 갖는 웰메이드 영화이지만 울림을 주는 영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웰메이드 영화로서의 상업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나름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진한 울림까지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영화의 전형이 바로살인의 추억이었다.

 

‘살인의 추억의 시사회가 있은 후 이 영화의 성공을 많이 들 예견했다. 현재 극장에서의 반응도 좋은 듯 하고, 주변 사람들의 구전도 호의적인 구전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들이 소프트한 코미디물이었기 때문에 우려되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살인의 추억은 성공할거라 믿고 성공해야 한다. 기존의 시장의 추세를 뒤집고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할 타이밍이 지금이고 그에 정확하게 부합할 영화가살인의 추억이라 믿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27일에 쓴 글: 최고의 감독 봉준호의 화려한 불꽃 같은 영화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