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관계와 소통의 중심으로...

사이버펑크계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오시히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의 기술적 진보와 사이버공간의 위험성을 관계와 기억의 소멸을 통해서 논하지만 결국 쿠사나기 소령의 마지막 대사처럼 또 그 웹에서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공각기동대>의 수준처럼 웹이 그리고 사이버공간이 현실과 환상의 격차를 줄여 현실과 사이버공간이 거의 100% 동일한 수준이 아직까지는 아니지만 어쩌면 결코 멀지 않은 미래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웹의 발전은 단기간내에 그 속도면에서 무한가속화 및 타기술들과 연결되어 새로운 신천지를 열어 나가고 있다.



96년도에 도스를 이용해 넷스케이프를 열고 선배형이 보여줬던 플레이보이지 사이트의 충격, 메모장으로 일일이 태그를 넣어서 처음 만들어보았던 홈페이지, 텔넷을 이용해서 겨우 겨우 사용했던 이메일,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과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던 통신, 겨우 7년전의 일이지만 그 조악함이 새삼 우습다. 그런데 여러 놀라운 발전의 와중에서 그 핵심에 있는 것은 단연 관계의 형성과 소통이다. 모든 비즈니스 모델의 기본이자 핵심은 바로 구매자와 판매자의 소통이며, 갖은 사연이 담긴 이메일은 서로의 메일박스를 넘다들며, 갖은 관심과 목적을 가진 수 많은 커뮤니티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웹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관계의 형성과 소통에 웹을 중심에 두고 있다.

새로운 관계의 형성과 소통의 와중에서 정보의 전달을 통한 권력은 모든 네티즌들에게 나누어졌다. 그 동안 우리가 누렸던 정보 전달 및 수용의 과정의 중심에 있던 TV와 라디오가 선택된 몇 몇이 주도하는 매체였다. 하지만 웹은 누구나가 동등한 입장에서 제약없이 자신의 정보와 주장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 정보와 주장이 네티즌들에게 공감을 얻게 되면 그 정보와 주장은 아주 쉽게 카피가 되어 웹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간다. 이와 같은 과정은 TV나 라디오가 결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더구나 의미 있는 점은 힘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전파가 아니라 오직 네티즌들의 자생적인 행동에 의한 결과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웹을 통한 유행, 인기 혹은 트렌드는 바로 지금 네티즌, 대중의 기호와 관심을 즉각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TV와 라디오와 같은 매체의 특성과 가공할 전파력은 아주 사소한 것을 사건으로 그리고 일반 사람들을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아직까지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반미시위와 온 국민의 붉은 악마화, 노무현 대통령 당선 같은 사건의 중심에는 단연 웹이 존재했다. 그리고 얼짱카페를 통해 스타가 된 박한별, 한양대 롯데리아 걸 남상미, 어린아이의 수준을 넘어선 듯 보였던 구슬기 등이 그 예이다. 이 외에도 웹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다소 과격하지만 시원한 개그를 선보이는 김구라, 황봉알, 노숙자, 플래쉬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거침없는 메시지를 전하는 5p. 이들 또한 네티즌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스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웹은 관계의 형성과 소통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이에 따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매체가 되었다.

 



2. 네티즌들의 글 영화가 되다.

웹이 네티즌 누구에게나 열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체가 되었기에 수 많은 네티즌들은 자신의 개인 취미의 영역을 웹으로 확장했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웹에 올리기도 하고, 사이버자키가 되어 기성 디제이보다 더욱 재기발랄한 방송을 선보이기도 하며, 자신만의 소설을 웹상에 올리기도 한다. 사소하게 시작된 그 행동의 결과가 네티즌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상업력을 가진 제품으로 시장에 나타나게 된다. 그 효시가 97년에 PC통신에 연재되어 수 많은 통신인들의 인기를 얻었던 <퇴마록>이 소설로 출간되고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후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영화로 제작되어 초미의 관심속에 흥행에 성공했고, 얼마 전 <옥탑방 고양이>가 높은 시청률 속에 막을 내렸다. 흥행성공과 높은 시청률이라는 성공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라는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이 일반 네티즌들의 영역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당연 웹이다. 웹이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지도 혹은 책상서랍안의 글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웹을 통해 다른 네티즌들과 소통하고 이는 다시 소통한 네티즌들에 의해 다른 공간으로 전파되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한다.

영화기획에 대해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기획은 관객의 트렌드를 한 템포 빠르게 집어내는 것이라 한다. 즉 기획시점에 한 템포 빠른 영화는 개봉시점에 정확하게 관객의 욕구에 부응하게 되고 이는 곧 영화의 흥행성공을 기한다는 것이다. 웹을 사용하는 네티즌들이 얼리아덥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면 웹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게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주 관람층과 핵심구전전파 세력과 네티즌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인터넷소설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점은 아니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웹에서 어느 정도의 검증을 거친 인터넷 소설은 꽤 매력적인 영화소재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인터넷 소설은 영화의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와는 많이 다르다. 작법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며, 일관된 사건의 흐름이 없이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대부분이다. 기승전결 혹은 갈등과 해소의 구조들을 진행, 반복해야 하는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영화제작이 결정된 인터넷 소설은 전문시나리오 작가에 의해서 영화에 걸맞게 다시 쓰여진다고 한다. <퇴마록>,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 또한 새롭게 영화, 드라마에 맞게 변화되었다. 많은 매력과 난점이 함께 존재하지만 네티즌들의 지원을 업은 인터넷 소설은 기존 작품의 성공과 함께 영화계의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그 동안 전문 작가, 혹은 프로듀서, 제작자, 감독에 의해서만 탄생될 줄 알았던 영화가 이제 일반 관객, 네티즌들에 의해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영화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바램이라면 웹은 그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3. 과연 우리들의 이야기일까?

영화에 대한 시선은 개인의 영화적 경험과 시선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이기에 영화에 대한 평가도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 이 세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매번 나와 같은 일반 네티즌, 관객의 영화가 어떨까 하는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보지만 이상하게도 만족한 적은 없었다. 이상하게 아이디어만 번뜩이고 몇 가지 에피소드만 살아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엽기적인 그녀>는 끝까지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행각으로 일관하지 못함이 내내 아쉬웠다. 후반에 안면을 바꿔 사랑에 대한 일장언설을 시작하고, 결국 평범한 멜로물로 변화되며 엽기적인 그녀 또한 멜로 영화의 평범함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목만 엽기적인 그녀였을 뿐이지 그다지 엽기적이지 않았다. PC통신에 연재되었던 그 가학적이고 고어적이기 까지 했던 엽기적인 그녀의 작태의 후련함은 실종되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에피소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최수완양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것이다. 동갑내기를 과외한다는 설정이 워낙 참신해서 영화는 꽤 매력적이었지만 동갑내기 과외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오는 화학반응의 결과는 평이했다. 권상우와 김하늘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없었다면 결코 채워지지 않았을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옥탑방 고양이>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소설 <옥탑방 고양이>에 대해서 혹자는 <네멋대로 해라>의 체취를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옥탑방 고양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했다. 젊은 연인들의 뜨거운 화두인동거가 단순한 설정으로 머무르고 있다는 점, ‘동거를 통해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들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옥탑방 고양이>은 이경민, 남정은 커플의 동거라는 설정만을 초반에 깔아놓았을 뿐이지 일반적인 트렌드 드라마의 구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남정은이라는 여자 주인공이다. 억척스럽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투여된 전형적인 주인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은 다소 민감한 사안들을 건드리고 있음에도 드라마는 트렌드 드라마의 규격에 맞게 재단되었다.

 
2003년 8월 11일에 쓴 글: 한 때 참 유행이었는데...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