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작가의 작품을 접할 때면 항상 동심과 순수함에 한 줄기 청량감 나의 일상에 감돈다. 그의 시 와 글은 다소 현실에서 벗어난 동화지만 냉정한 현실감각으로 생을 지켜내는 우리들에게 잊고 지낸 동심과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그 글과 시가 올라오는 것은 동심과 순수함에 대한 갈증이기 때문일 것이고, 그 글을 잊고 미소짓는 이 또한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오세암'은 동심과 순수함을 찾는 정채봉작가의 동명 소설을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정채봉 작가의 작품과 동일한 아우라를 형성한다.

 



'오세암'은 설정부터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형성하는 환경과 등장인물 모두 시대에 뒤쳐져 있다. 더불어 시대적 배경 또한 과거이다. 어머니를 잃은 남매, 누나는 실명을 했고 남동생은 서럽게도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초반부터 '오세암'은 신파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즉 현재의 시대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복고의 배경에 복고의 정조를 기반을 깔고 있다. 작품을 지속시키는 것은 엄마를 그리워 하지만 너무나 귀여운 캐릭터인 '길손'과 실명했지만 씩씩하게 '길손'을 보살피는 어른스러운 누나 '감이'의 모습을 통한 슬픔의 정조이다. 하지만 '오세암'을 보고 있으면 능히 그 신파의 정조에 마음을 맡겨버리고 길손과 감이와 함께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길손과 감이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 작품이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철저하게 신파이지만 왠지 그 신파에 감염되어 눈물을 쏟아내고 싶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그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집으로'가 잊고 지냈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애잔함이라면 '오세암'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길손과 감이의 마음과 같은 순수함일 것이다. 비록 작품이 드러내고 있는 메시지는 각박한 현시대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만 희소하기 때문에 우리가 잊고 지냈기 때문에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왜 '오세암'은 현재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연결고리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집으로'에서 주인공 소년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그를 통해 우리는 작품과 튼튼하게 연결된다. 하지만 '오세암'은 그런 연결고리가 없다. 다만 길손과 감이의 모습을 통해 어떤 슬픔만이 가슴 한켠을 채울 뿐이다. 더불어 길손과 감이 외의 캐릭터들은 너무 밋밋하다. 캐릭터의 외양도 그렇지만 한없이 착하기만 한 캐릭터들 속에서 밋밋함은 가중된다. 헐리우드산 애니메이션과 재패니메이션 사이에서 나름의 고심한 흔적은 보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오세암'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정채봉작가의 작품과 동일한 동심과 순수함의 메시지가 첫째일 것이고 튼실한 드라마구조가 두 번 째일 것이다. 그 동안 한국애니메이션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네러티브 진행이 튼실해 진 것이 아마도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오세암'의 고전이 비단 작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먼저 이 작품의 개봉일은 5 1일이었다. 오세암의 메시지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가정의 달에 개봉하는 것은 얼마나 최적의 선택인가? 더불어 오세암의 말미에 등장하는 성불한 길손을 통한 불가의 메시지까지 본다면 시기적으로는 최적이다. 더구나 5 8일은 어버이 날이자 부처님 오신날이 아니었던가? 5월이라는 가정의 달과 작품의 메시지를 연결지어 포지셔닝 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단순하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작품을 포장할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더불어 한국영화산업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무관심도 아쉬울 뿐이다. 개봉하는 극장들의 '오세암' 개봉시간을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오후까지만 상영하거나 격일로 저녁에 상영하는 극장이 거의 대부분이다. 아마도 흥행력에 있어서 열세할 것이란 판단에 '오세암'을 오전과 오후에만 편성했을 것이다. 역시 극장을 찾는 관객의 볼 권리는 줄어들고 극장의 횡포는 여전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제작사만으로 한국애니메이션의 중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관객의 볼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배급사와 극장이 있을 때 최소한의 기틀이 마련된다. 시장의 논리 앞에서 그 모든 것이 전략적인 포석으로 합리화 될 수 있지만 문화산업을 하는 이는 그와는 다른 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내내 아쉬울 뿐이다.

 

'오세암'은 엄청난 관객동원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흥행스코어가 당연한 작품도 아니다. 작품의 질도 그렇고 작품의 주제와 어울리는 시기의 개봉이 그렇다. 어쩌면 부당한 배급과 극장파워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한국애니 중흥의 사명을 띈 일군의 작품들 중에 1번 타자인 '오세암'은 흥행성적에서는 파울플라이 아웃정도 되는 듯 하다. 나름대로 회심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2003년 5월 19일에 쓴 글: 대학 선배 누나인 미정누나(성우로는 김서영)가 주연을 맡아서 신기하고 남달랐던 영화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