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도 구조조정해야만 한다"라는 전투적 발언에 절대 동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가는 말임에는 분명하다. 이는 한국 영화의 현재 상황과 연관되어 이야기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업적이고 대단위의 자본과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 영화는 성공하고 작가주의지향적이며 예술성을 견지하고 있는 영화들은 추풍낙엽처럼 극장에서 내려지고 있는 상황말이다. 이 상황 앞에서는 역시나 관객도 구조조정해야만 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하지만 그 책임을 무조건 관객의 몫으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하게 말하건데 관객은 가해자임에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영화의 호황은 장기적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몇 년 안에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성장에 영화인들은 그 호황에 기뻐하고 정부는 국가의 기간사업으로의 육성을 외치고 있으며 관객은 이제 한국영화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호황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 쉬리가 공전의 흥행을 기록해 몇백억의 매출을 냈을 때 그 동안 사장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던 영화사업은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사업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즉 성공만 하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사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투자사들은 영화에 투자하기 위해 펀드와 영화전문사업부분들을 만들었고 여러 비즈니스 맨들은 영화제작이라는 업종으로의 전환을 꾀하게 되었다. 충무로에 엄청난 영화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덕분에 영화제작사들은 이전보다 쉽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이 없었다면 현재의 한국영화의 활황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영화제작을 포기하지 않은 개념있는 제작사들과 창의적인 인재들과 스크린쿼터를 지켜내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한 인사들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제작사들은 여유있는 자금속에서 좀 더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영화제작시스템도 상향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작년 부터 한국영화의 불온한 조짐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와 논쟁이 제기 되었다. 그 논쟁의 핵심은 작품성 있고 작가지향적인 영화들은 여전히 영화시장에서 발 붙일 곳 없이 없다는 것이었으며 폭력적이고 볼온한 정서와 상업적인 코드들만을 갖고 있는 영화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강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의견이 피력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좀 더 표현을 완화해서 말하자면 좋은 영화를 관객이 외면하는 것에 대해서 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관객의 잘못도 제작사와 투자사의 잘못도 아니다.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한국에 영화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한국 관객들이 받던 영화들을 좀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관객들은 다채로운 영화의 수혜자들이 아니다. 즉 헐리우드 영화로 대변되는 네러티브선이 단순하며 비주얼이 화려하고 스타가 등장하는 이른바 상업영화의 수용자들이다. 더구나 과거의 한국영화라는 것들도 이런 헐리우드 영화와 별 차이가 없다. 더구나 영화의 기본적인 질이라는 부분에서 수준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 후 텔레비젼의 등장 후에 더욱 이러한 현상은 심화된다. 즉 한국영화의 대부분 관객들은 다양한 형식의 영화들을 접할 수 없었고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적형식에 익숙하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영화는 고차자원의 문화가 아니며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재 상대적으로 교육수준과 문화수준의 향상으로 관객들의 의식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이 부분도 한국영화의 활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렇기에 관객은 피해자인 것이다. 즉 이전에 계속적으로 그들이 제한되어 접한 영화들이 대부분 상업영화의 형식들을 가진 영화였기에 상업영화의 코드에 익숙하고 편한 것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왜 예술영화와 작가주의 영화들을 외면하는가? 라고 물어보는 것은 영 자세 안나온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영화의 성공과 실패는 관객이 결정한다.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작품자체로의 의미만을 갖는다면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관객과 소통하고 더불어 자본주의시장체제에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작품활동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관객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냉정하게도 흥행이라는 관객의 선택에서 제외된 감독은 작품활동에 이런 저런 제약이 따름은 물론이고 어느 투자자도 그의 작품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 향후 한국 영화의 흐름은 거대 블럭버스터가 될 수도 있고 예술성 높고 작가지향적인 영화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관객은 한국영화 권력의 핵심에 서 있다.

작년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그렇지만 그 수치는 평균이라는 가장 간단한 기준으로 봤을 때 굉장히 위험한 수치임에 분명하다. 그 이유는 상위 몇 작품에 몰린 관객의 숫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한쪽에 치우치는 관객의 관람행태에 기인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의 집중화 상황과 편식 상황에 관객에게 그리고 제작사나 투자사에게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현상에 대한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향후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즉 현재의 한국영화의 활황을 어떻게 하면 산업적 파워는 물론 양질의 문화로서 전이시켜야 하는가라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영화시장은 현실적으로 이원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상업적이고 블럭버스터화된 영화의 메인스트림 시장과 예술영화와 작가주의지향적인 영화시장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상업영화 시장은 전체 영화 시장의 자금상황을 윤택하게 하고 좀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과 영화제작테크닉의 발전을 기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영화 시장은 영화 창작성의 베이스가 되고 문화산업의 순기능으로서의 역활을 수행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지난 해에 개봉한 "고양이를 부탁해""나비" "라이방"등의 경우 실패의 원인을 보자면 관객의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작비 더구나 마케팅비용의 과대집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화의 관객층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블럭버스터 영화의 전략을 활용한 것이 더욱 손실을 크게 했다고 생각한다. 전방위적인 개봉관의 확보를 통한 개봉보다는 거점을 정한 장기적 개봉이 더 좋은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은 절대로 실패하면 안된다. 이유는 이런 영화들이 실패하며 이후에 영화시장에서 예술지향적이고 작가지향적인 영화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기 때문이다. 투자사들은 한 영화가 실패하면 그 영화의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후 투자를 기피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영화의 예술영화 관객층은 실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국젱영화제의 수 많은 관객들과 온, 오프라인의 동호회들이 이를 반증한다. 더불어 예술영화의 발전은 작더라도 안정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시장만 존재한다면 그 시장을 점유하기 위한 투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예술영화의 시장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가능성에 대한 부분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 될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해서 일단은 한국영화인들이 흥행과 매출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현재 경이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집으로... 의 경우 솔직히 내가 투자자라면 절대 투자 안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신념 있는 투자와 제작의 실례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여전히 나름의 소명을 갖고 영화일을 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메이저 투자사 제작사의 경우 이익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점에서 미약하나마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도 산업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투자와 육성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향후의 가능성을 좀 타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관객의 신경전과 싸움은 결국 망함의 지름길이며 소모전일 뿐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미래에도 여전히 관객은 영화의 가장 강한 권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영화의 경우 활황의 중심에는 관객이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욱 다양한 소통의 지점을 만드는 것일 것이며 흥행이라는 서비스 차원의 관점과 교육이라는 문화라는 관점에도 신중하게 접근할 때가 현재의 상황이 아닐까 한다. 현재의 상황을 너무 오버해서 받아안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2002년 4월 14일에 쓴 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못 찾고 있겠지.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