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점유율 40%! 이 수치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헐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적인 위력을 떨치며, 글로벌한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한 이 때에 한국영화 점유율 40%라는 수치 앞에서 우리는 샴페인을 터트리며, 현재 한국 영화의 인프라와 인력과 관객들의 환대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영화계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부는 조짐들 앞에서 과연 무한한 박수의 세레머니로 올 해를 장식해도 좋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 해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이상한 난기류가 극장가에 형성이 되었다. 평단과 영화애호가들의 극진한 애정속에 개봉한 일군의 영화들 봄날은 간다. 꽃섬. 와이키키 브러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의 영화들은 일 주일 이상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의 뒤를 잇는 조폭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채택한 일군의 영화들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등의 영화는 연일 문정성시를 이루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한쪽은 한국영화의 퇴행징후라는 결론을 내렸고, 한쪽은 상황을 그렇게까지 몰고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한국 영화가 이전의 홍콩영화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까지 논의가 되었다. 더불어 친구 영화를 본 고등학생의 급우 살해 사건에 이르러서는 조폭 소재 영화의 집단 포화가 시작되었다. 분명 현재의 한국영화의 흥행양상은 양질의 영화, 내적으로 성숙한 영화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그렇다고 꽃섬이 고양이를 부탁해가 친구처럼 몇 백만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익분기점을 넘지도 못할 정도로 무너지는 영화 앞에서 확실히 한국영화의 편식 현상은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의 방향성을 갖고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영화계가 어떠한 작품관이나 문화적 사명감을 갖고 영화을 제작하기 보다는 하나의 트렌드에 영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친구로 형성된 현재 한국영화의 트렌드을 업고 그 안에서 흥행을 통한 극대 수익의 창출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사업적으로는 올바르나 문화적 예술적으로서는 올바르지 않다는 영화의 속성과도 같은 딜레마의 연속이 이 지점에서 다시 고개를 쳐든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일련의 영화들이 과연 한국 영화 현재의 트렌드에만 기댄 영화일까? 이 부분에서 결정을 확실하게 내리기는 쉽지가 않다. 신라의 달밤은 확실한 웃음을 주는 영화로 조폭마누라는 성이 바뀐 참신한 구도로, 달마야 놀자와 두사부일체는 아이러니한 상황설정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기인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삶의 정수와 예술혼을 담아내거나 혹은 담아내려고 노력한 영화들은 아니지만 대중문화로서의 기능은 이 영화들의 강점에 의해서 나름대로 의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급된 이 영화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코믹물이라는 것과 조폭이라는 소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적으로도 썩 좋은 모습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산업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예전 아시아의 맹주로 굴림했던 홍콩영화는 코믹액션물과 도박과 갱이라는 소재의 천편일률적인 제작으로 인해서 급기야는 추락하고 말았다. 물론 홍콩의 중국반환과 같은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즉 현재의 대중의 트렌드가 영원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쉽게 열광하지만 또 쉽게 실망하고 외면한다. 다시 말하자면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동일한 구성과 동일한 배우 비슷한 결말 앞에서 관객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영화도 현재 이와 같은 상황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된다. 산업적으로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중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현재 흥행가도를 달렸고 달리고 있는 영화들은 관객을 쉽게 열광하게 하지만 또 쉽게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동일한 장르가 동일한 소재로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들은 현재 한국영화에서 산업적으로도 최적의 전략은 아닌 것이다. 영화 산업은 문화산업임과 동시에 크리에이티브한 산업이다. 문화산업이기에 대중문화에 대한 나름의 책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영화의 파급효과가 문화로서 대중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영화산업의 도의적인 책임이다. 더불어 크리에이티브한 산업이기에 기존의 흥행관행과 트렌드에 집착하는 것은 수익의 감소와 자멸의 길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소재와 새로운 장르와 몇 몇의 스타배우에 의존하는 스타시스템이 아닌 폭넓은 배우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한국영화의 제작실태는 문화적으로도 그리고 산업적으로도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앞에서 제시되었던 두 가지의 논의의 진행방향의 다른 축은 현재 한국영화의 관객에 대한 부분이다. 흥행은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와 감독, 배우, 스텝의 영역이 아니다. 그 보다는 관객의 영역이다. 최근 한국 영화의 편식 현상은 어느 면에서는 바로 관객이 만든 것이다. 물론 전적인 책임을 관객으로 돌리기에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기존에 계속적으로 관객들이 접한 영화들이 헐리우드 영화들이며 보기에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관객들은 봄날은 간다와 같이 의미가 안에 숨고 형식이 과잉되지 않는 담백한 영화보다는 동감과 선물과 같이 외부로 표출되고 형식이 과잉된 영화들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다른 영화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영화 애호가가 아닌 이상 복잡하고 난해한 영화적 형식들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굉장히 난감한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관객에게 익숙한 형식들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 아니면 관객과의 조우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이 부분이 풀리지 않는 난제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은 시스템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그렇기에 현재 진행된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꽃섬등의 영화의 마케팅에는 문제가 있다. 마케팅에 몇 억씩 써가면서 마케팅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흥행형식이 넘치는 영화들과 동일한 마케팅 방식과 동일한 광고채널을 갖고 진행되었기에 당연히 마케팅 비용은 커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진행하고서도 마케팅의 효과는 낮다. 흥행요인이 부족하다면 차별화 된 마케팅 전략으로 상승효과를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제작에 있어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제작이 필요하다. 흥행요인이 없으니까 배우라도 a급 배우를 써야하겠다는 고려는 그래서 위험하다. 영화적 형식들이 익숙하지 않지만 좋은 영화라면, 만들어야 하는 영화라면 그에 걸맞는 적어도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관객의 취향이 그리고 관심이 조금씩 변화되지 않을까? 물론 이론적으로는 아주 간단한 문제인 듯 하지만 실재로 현실에서는 매우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행관행을 영화를 따르는 영화들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옳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속성을 경제의 양상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환경이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체질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더 옳고 더 시간을 절약한다.

이의 희망을 최근 고양이를 부탁해의 재개봉 현장에서 찾아본다. 지금까지의 흥행에만 부합하는 영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성과 그리고 관객의 관심이 올 해의 마무리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점과 불온한 징후속에서도 나는 현재의 한국 영화 상황을 희망적으로 본다. 산업적 파워의 성장은 문화적 질의 하향이 아니라 좀 더 나은 환경과 인프라의 조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 안에서 분명 새로운 대안이 도출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내 개인적인 생각들은 분명 아주 미숙한 의견이며 더불어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예술로서의 영화를 믿고 혼을 담아 영화를 배우고 만들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나의 의견은 그야말로 추운 겨울날 밖에 한번 안 나가보고 추위에는 이렇게 대처해야지 하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머리 숙여 널리 이해를 구하고 싶다.

2001년 12월 10일에 작성한 글. 이 즈음부터 산업에 대한 글을 썼던 것 같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