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타이타닉>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영화의 감독인 <제임스 카메룬>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피력해야겠다. 난 개인적으로 몇 몇의 미국 감독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로버트 제메키스> 그리고 바로 <제임스 카메룬>이 그들이다. 다른 영화이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대중적인 창의력의 극대점에 서 있다는 것과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들을 스크린에 펼쳐보이는데에 아주 남다른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다른 기능의 하나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면 분명 이는 훌륭한 재능의 하나일 것이다. 더불어 헐리우드의 특허처럼 되어있는 현란한 특수효과와 숨막히는 스펙타클 그리고 그것들을 구현하기 위한 자본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항상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돈 쓸려면 이 정도는 써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1. 제임스 그는 나에게...

<제임스 카메룬>이라는 감독을 처음 알게된 것은 <터미네이터>였다. 텔레비젼에서 중학생 때 봤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온통 정신을 몰두해서 본 기억이 있다. 일종의 커다란 추격전의 양상을 띤 전체 극은 추격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특히나 마지막 모든 표피가 벗겨지고 기계덩어리만 남은 터미네이터가 쫓아오는 장면은 호러로 느껴질 정도로 오싹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후에 전 세계적인 열광을 물러일으킨 그의 후속편까지 <제임스 카메룬>에게 상업영화의 천재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그리 아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안에 다소 낮은 수위지만 심오한 사이버펑크의 냄새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어찌보면 <터미네이터> <아키라> <공각기동대>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이며 또는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 <제임스 카메룬>은 분명 대형 상업영화의 자장안에서 쉽지 만은 않은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점 이외에 그를 단순한 상업영화의 감독과는 차별화시키는 점이다.

 

2. 타이타닉 vs 진주만

<타이타닉>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훌륭한 블럭버스터라고 생각한다. 이왕 떼돈들여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영화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반면에 최근에 개봉한 <진주만>은 그 반대편에서 돈을 헛들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타이타닉>은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현재의 우리가 <타이타닉>의 재난을 쫓는 과정과 잭과 로즈의 로맨스가 그것이다. 그것은 <진주만>과 굉장히 닮아 있다. <진주만>에서는 진주만 공습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세 주인공의 로맨스가 교차되어 있다.

 

<타이타닉>에서 잭과 로즈의 애정은 애정이외의 다른 하나의 중요한 것이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잭이 로즈의 단순한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그녀에게 인생의 새로운 가치관을 부여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영화속에서 로즈는 일종의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다시 말하자면 오직 가문의 부의 지속을 위해 그녀는 결혼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현실에 몸부림치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벗어날 의지는 전혀 없다. 영화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과정에서 잭의 바닷물의 차가움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이내 자살을 포기해 버리고 만다. 즉 그녀 또한 상류층의 부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며 자신의 현실을 막연하게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새롭게 삶의 정수를 부어 넣는 것은 바로 잭이다. 상류사회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사랑과 자유를 위해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가 바로 잭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굉장한 논리성을 부여하게 된다. 즉 왜 그들이 영화 후반에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함께하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쓰는지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을 하면서 차가운 바다속으로 꺼지는 잭의 모습과 남은 로즈의 모습이 강한 잔상으로 남게 되는 것도 이러한 논리성에서 기인한다. 그런 그들의 로맨스는 좀 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하는 가장 큰 뼈대가 된다. 하지만 <진주만>은 그렇지 않다. 진주만 공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가는 것이 세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로맨스는 <타이타닉>에서의 논리성을 갖고 있지 못하고 극적 골격의 부실함은 결국 굉장히 지루한 영화로 남게 만든다. <진주만>에서 에블린과 레이프의 애정이 시작되는 과정은 단순하게 검사장에서의 호의였으며 다시 데니와 에블린의 대니의 애정의 시작은 비행기 한번 같이 탔다는 것이다. 그들의 애정의 논리성의 부재는 그들의 애정을 그다지 투명하지 않은 눈-가장 순수해야 할(설정상, 그리고 감정의 이입상)여주인공은 그래서 그다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룬>은 골격을 확실하게 만든후에 이야기를 진행시키기고 있기에 관객은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다. 반면 <진주만> <마이클  베이>는 진주만 공습의 폭격에만 관심을 쏟았기에 그 장면을 빼고는 -그것도 아주 시각적인-별로 볼 것이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처럼 같은 블럭버스터라고 해도 이 영화는 이처럼 다르다. 아니 극과 극이다.

 

블럭버스터의 어원은 한 블럭을 쓸어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폭탄을 말한다. 거대한 자본과 스타 그리고 대중의 감수성과 신경을 자극하는 비주얼로서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아주 적절한 용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진정한 블럭버스터일 수는 없다. 단순하게 흥행의 수치만으로는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전세계적인 마케팅과 미디어 정책으로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돌리는 것은 쉽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돈의 문제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아깝지 않았을 때 비로소 블럭버스터로서 체면이 서는 것은 아닐까?


 

3. <타이타닉>의 이면에서...

솔직히 <타이타닉>이나 <진주만>을 역사적 사건에 숨져간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영화같은 소재를 영화로 만든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타이타닉>을 만들기 위해서 당시의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했다는 기사나 <진주만>을 당시의 군인들을 초대해서 시사회를 했다는 것은 마케팅 전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의 의미성을 지워내버리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타이타닉>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계급에 대한 메세지들이다. 영화가 계속되면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타이타닉의 구조들이다. 특등칸과 3등칸은 당연하게 계급의 구별 표식이며, 타이타닉의 갑판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록 점점 하위의 계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잭과 로즈의 결합은 바로 상이한 계층의 결합이기에 갈등을 빚는다. 만일 잭이 로즈의 정략결혼 대상자 만큼의 부호였다면 그러한 갈등들은 그다지 크게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상위계층의 모습속에서 점점 그들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며 이는 마치 타이타닉의 침몰이 그들의 행동의 마지막 결과처럼 보인다. <제임스 카메룬>은 이 처럼 계급에 대한 단상들을 이 영화속에서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또한 앞선 계급의 이야기와 함께 그 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자유의지임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로즈라는 캐릭터로서 형상화 된다. 상류층의 여자로서의 굴레보다 그 계급의 가당치 않는 모습보다 더욱 위에 있는 것이 바로 로즈의 자유의지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메세지는 잭과 로즈의 애정을 더욱 범상치 않게 보여주며 그들의 마지막 약속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즈의 지나간 인생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등장한다. 그 사진을 통해 더욱 그러한 잭을 통해 로즈에게 전이된 자유의 의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앞 서 이야기 했듯이 <제임스 카메룬>은 상업영화의 시스템안에서 그리고 스펙타클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다. <타이타닉>도 분명 그러한 영화이며 그렇기에 더욱 영화적 힘은 극대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위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다소 함량미달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듯 하다. 비교우위라고 이야기 하기는 좀 뭐하지만 블럭버스터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4. 블럭버스터에 대해서

MAIDE IN USA라는 딱지 앞에서 나 조차도 어느 정도의 거부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미국산 블럭버스터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하는 영화들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고 그것이 대중의 관심과 호주머니의 돈을 투자하게 한다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비지니스는 돈을 번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공정한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 관객이 지불한 관람료와 기회비용을 그 영화를 통해서 관객이 만족한다면 공정한 교환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판단은 관객의 몫일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돈을 쳐바르고서도 그 기대치를 무너뜨리는 영화는 관객 우롱하는 처사일 것이다. <타이타닉>은 블럭버스터임에도 개인적으로는 돈의 값어치를 하는 영화이며 앞서 이야기한 관객과의 공정한 교환을 이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한 때 헐리우드의 영화들은 전세계를 평정했다. 그리고 현재 그러한 영화들은 블럭버스터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융단폭격하고 있다. 요즘에 드는 생각은 이제 그 끝이 보이는 듯하다. 점점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 점유율과 이야기만 다를 뿐이지 극도로 공식화된 구성들은 블럭버스터의 위력을 상실하고 있다.한 마디로 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최근 40%가 넘는 자국영화 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한국으로 대변되는 아시아 영화 질의 상승이 그렇고 영국과 프랑스의 유럽의 경우도 그렇다. 어쩌면 이제 헐리우드는 볼 것을 다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되는 영화를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들이 든다.

 
2001년 8월 26일에 쓴 글: 카메룬이 세상의 왕이 되었던 영화니까.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