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흥행대작, 그리고 <쉬리>, <친구>와 함께 내내 회자되는 영화, 사회적 조류가 마케팅 파워가 되어버린 영화, 명필름을 일약 메이저로 부상시킨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을 말하기 전에 먼저 박혀버린 헤드라인은 이 처럼 다양하다. 그 만큼 JSA는 흥행대박이라는 칭호와 함께 지금까지도 여전히 관심의 중심이 서 있는 영화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스크린을 확보해 개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쉬리> <친구>와 함께 이야기됨으로써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흥행성에 입각한 산업적 파워가 강력한 영화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JSA의 가치는 산업적 파워로서만으로 각인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영화라는 산업속에서...

인정하기 싫을지라도 영화는 그 태생적 핏줄부터 산업으로서의 강력한 매력을 갖고 탄생했다. 그리고 여전히 영화는 산업과 예술의 얼굴을 매번 바꿔 쓰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중에서 어느 쪽의 얼굴을 자신의 인연으로 맺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또는 그 두 얼굴과 사이 좋게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는 문화도 상품이기 때문에 우리와 쾌적한 스크린을 통해서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의 대부분은 산업이라는 친구이며, 골방에서 구식 비디오로 자막을 옆에다 두고 만나는 친구의 대부분은 예술이다. 이러한 대부분의 상황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는 산업성이 강하고 상품으로서의 기능이 강한 영화로 인식하게 되는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JSA는 당연하게 상품으로서의 기능과 산업성이 강한 영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JSA는 기획영화다. 명필름의 <심재명>, <이은>대표에 의해서 DMZ라는 소설을 기본으로 기획이 되었고 <박찬욱감독>, <이무영감독>등이 참여해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이를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수행했다. 거기에다 <이병헌>,< 이영애>, <송광호>의 속칭 A급 배우들의 진용과 40억이라는 예산을 갖춤으로써 완변한 기획영화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작업방식 즉 기획영화의 방식은 자본의 메카 헐리우드에서 늘상 사용되는 제작방식이다. 즉 현재 개봉하고 있는 <진주만>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역사에 남을 흥행을 기록함으써 완벽한 기승전결의 기획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JSA는 흥행영화라는 화두로서 이야기가 되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JSA는 단순하게 흥행영화로서만으로 이야기되어 될 수만은 없는 영화이며 영화 내적보다는 외적 가치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쉬리> <친구>의 형제가 될 수 없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2. 관객과의 적절한 눈높이

처음 JSA를 받을 때는 참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잘 풀어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지만 감히 말하건데 JSA는 최고의 작품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관객과의 최적의 눈높이를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비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과연 한국의 작가감독이라고 할수 있는 <홍상수감독>이나 <김기덕감독>, <이창동감독>이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접근했다면 와 같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물론 새로운 또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는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과의 최적의 눈높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크게 보면 두 부류의 관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그 하나는 영화 애호가라고 하는 일종의 감독이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기호들을 잘 알고 있는 부류이며 다른 하나는 영화를 아주 개인적인 취미나 데이트 그리고 문화생활의 측면에게 접근하는 부류이다. 안타깝게도 후자의 부류의 비율이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해한 기호로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영화들은 그들에게 와닿지 않는다.그 보다는 아주 쉬운 기호와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감흥을 증폭시키기에 유리하다. 그 방법이 대부분 대중적이고 상업적이지만 역시 그 그 방법이 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JSA>는 관객에게 극대의 감흥과 작품에서 전달하려는 주제를 전달하는데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그 효과는 강력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수준이 낮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관객의 감흥을 최대로 증폭시키는 것이 어쩌면 모든 영화의 최고의 목표는 아닐까?


 

3, 그렇다면

JSA는 크게 미스테리 스릴러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두 명의 북한 병사와 두 명의 남한 병사가 북한 초소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골격이다. 하지만 그 뚜껑을 열어보면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극적 반전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을 보여주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스릴러인가? 장르의 성격에 완벽한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갖는 스릴러가 아닌 함량미달의 스릴러라는 장르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과연< JSA>가 시간순서대로 내러티브를 진행시키는 선형적인 구성을 취했다면 지금의 작품과 같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스릴러라는 장르를 차용한 이유를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관객의 관심을 붙잡아두면서 나중에 비록 논리적인 반전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감흥을 증폭시키고 메시지의 힘을 강력하게 만든다. 구체적으로 영화의 구성을 보자면 이 영화에서 남과 북이라는 굉장히 난해한 주제를 어떤 식으로 효율적으로 전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는 이수혁병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구역에서 수색을 진행하던 도중 본대와 떨어져 지뢰를 밟게 된다. 바로 이 때 북한군인 오경필 중사와 정우진 중사와 조우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이수혁은 적이지만 그들에게 목숨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만일 지뢰를 밣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이수혁은 오경필에게 도움을 구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바로 그의 소총은 불을 뿜었을 것이다. 이 처럼 이수혁은 목숨이라는 개인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이 위협되었을 때 북한군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경필이 그의 목숨을 구해줌으써, 이수혁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줌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시작된다. 즉 남 북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지켜지거나 희생되었을 때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닐끼?

 

극중에서 보면 이수혁이 속한 중대와 오경필이 속한 중대가 군사분계선 위에서 조우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대의 장은 담배 하나씩을 나누어 피지만 뒤에 서 있는 병사들은 서로에게 잔뜩 긴장해서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즉 남자들 사이에서 아주 친근한 행위는 흡연이라는 외면적인 모습도 한 발의 총성에 의해서 피로 난자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생명을 교환한 이수혁은 총뿌리를 내린다.

 

이후 이수혁은 오경필의 초소를 오가며 형과 아우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의 상이한 문화들을 조금씩 극복하고 우정을 쌓아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모래성 처럼 쉽게 무너져내릴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수혁과 남성식은 어느 날 긴급출동을 하게 되고 시야확보를 위해 놓은 불 때문에 터져나가는 지뢰를 보게 된다. 그장면에서 이수혁은 남성식에게 자신이 제대를 하면 혼자 넘어가지 말라고 한다. 즉 그들은 여전히 적이고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어느 날 초소에서 이수혁은 오경필에게 귀순하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수혁은 적이라는 관계를 같은 편에 편입시키면서 극복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코파이를 먹던 오경필은 손에 먹던 초코파이를 맽으며 그에게 말한다. 자신의 꿈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남조선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장면을 접하는 우리는 분명한 하나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게 된다. 남한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만일 북한의 사람들이 남한의 실상과 물질적인 부를 알게되면모두 귀순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분명 북한이라는 나라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애국자가 있을 것이며 사회주의라는 이상화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결코 남한이 북한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포용과 관용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인정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전개된다. 남북의 두 병사 중에 이수혁과 오경필은 생명의 교환관계가 성립된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 둘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강력하다. 하지만 남성식과 정우진은 인간적으로 아주 나약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오경필과 이수혁처럼 생명이라는 교환이 성립되지 않은 않은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계속 남성식일병은 불안감을 표출하며 정우진은 상황이 악화되자 총을 겨누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이별의 순간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오경필의 상급자의 갑작스러운 초소방문으로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고 결국 남성식은 오경필의 상급자를 그리고 이수혁은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정우진을 사살한다. 당시 상황은 가장 인간적인 애정이 극도로 고조되는 시기이다. 서로를 이제 볼 수 없는 상황 그래서 헤어지기 아쉬운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는 총을 겨누고 심장을 향해 발사할 수밖에 없다. 즉 그들의 지금까지의 관계는 아주 작은 변화와 위기에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더불어 소피장이라는 중립국의 한국계 수사관을 기용함으로써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부분까지도 포함한다. 그의 주변에 서 있는 남한의 장성과 중립국의 장군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한국내적 그리고 국제적인 권력의 갈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피장의 아버지를 이야기함으로써 낮은 수위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과오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 기댄 바가 크지만 남과 북의 상황을 이 처럼 잘 그려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주 일상적인 네 병사의 교류를 통해서 주제에 잘 접근한 영화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는 그 구성을 통해서 다른 어떤 구성보다도 관객의 가슴에 다가선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4. 그리고

, 북의 관계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우리를 북한보다 우월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포용하고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는 않을까 한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통일의 날이 온다고 해도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들의 마음의 휴전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 영화가 한창 개봉되고 있을 즈음에 군에 관계된 두 가지의 사건이 터졌다. 하나는 조성모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대한 백마부대와 관련된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JSA에 관계된 JSA전우회의 명필름 난입사건이었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자신의 조직의 성전을 기대한다. 어떤 이유로도 자신의 조직이 상처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북한군과 교류한 적이 없다"는 그들의 논리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닫힌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북한 반잠수정이 출현했을 당시 군복무중이었다. 부대에는 긴급출동대기 상황이 벌어졌고 완전군장 상태에서 대기하던 우리는 설마 96년도 사건처럼 넘어왔겠냐는 생각에 웃고 있었다. 그런데 6공트럭이 연병장에 집결하고 실탄을 배분하려고 했을 때 굉장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분대장이었던 나는 "야 사살하면 훈장달고 헬기타고 집에 간다"는 말을 던졌지만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그 때 출동을 해서 96년도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나 또한 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아무 가차없이 총을 쐈을 것이다. 괜히 그 때 그 마음이 괜시리 미안해진다.

 
2001년 6월 24일에 쓴 글. 확실히 이 즈음부터 산업안에서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