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부로 있으며 남는 필름을 모아서 만든 단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장래가 촉망되던 신인감독, 새로운 타입의 시네마 키드 류승완 감독. 그도 어느덧 꽤 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중견감독이 되었다. 액션영화에 대한 나름의 스타일과 로망이 있었던 그는 지속적으로 액션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에 매진했다. 물론 액션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으나 결국 모든 설정은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로 인해 그의 작품에서는 특별한 설정과 독특한 액션은 존재했지만 장편영화의 가장 강력한 힘인 네러티브의 강력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여주고 싶은 액션을 먼저 생각하고 그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연결하는 느낌이 나에게는 강했다. 가끔 그래서 장편을 끌어나가는 힘이 부친다는 인상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와 같은 작품 방향은 웰메이드 영화로서의 만듦새는 떨어지지만 또 다른 감독들과는 차별화되는 신선한 방향이었음은 분명했고 바로 그것이 대중이 선호하고 열광하던 지점이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의 매력은 주먹이 운다까지만 유효했던 것 같다. 짝패부터 부당거래 이전까지 작품들은 액션스타일만 존재하지 그외에 다른 영화적인 재미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급기야 촌스럽다는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그 즈음에 류승완 감독은 꽤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부당거래로 넘어오면서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좋아하는 액션이라는 코드를 제외하고 네러티브와 캐릭터의 힘만으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꽤 괜찮았다. (당시에도 그래서 다음 작품이 참 기대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도 결코 떨어지지 않음을 이 작품을 통해서 증명한다. 많은 감독들이 초기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고집하고 변화하지 못하면서 점점 퇴물이 되어가는데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부당거래 이후 2년만에 다시 들고 나온 베를린. 첩보물로서는 다소 평범한 이야기 구조, 본 시리즈보다는 밋밋한 액션이라는 평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평범하지만 꽤 튼실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고 그 위에 류승완 감독의 액션이 아주 적절하게 조합되어 있다. 즉 부당거래를 통해서 성취한 자산 위에 다시 자신의 강점을 녹여내고 있다. 한 단계 진보했다는 인상을 분명하게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진일보하는 감독을 보았던 점이 있던가? 글쎄 최정점의 작품에서 내리막을 걸었던 감독들이 대부분은 상황에서 꽤 이례적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베를린의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덧붙임.

이경영이 최근 영화 중 꽤 비중있게 등장해서 반가웠다. 이제 조금씩 활동이 늘어나고 있어서 좋지만 나이로 인해 이제 할 수 있는 배역이 한정적이란 생각에 아쉬움도 크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면 볼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은 또 어떠했을까?

두번의 폭발신은 이 영화의 백미가 되어야 할 장면이었음에도 가장 거슬리는 장면이 되어 버렸다. 108억의 제작비가 엄청난 것 같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한국영화의 한계치가 드러나 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전지현을 보면서 워낙 영화 외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되어 몰입을 방해했던 것 같다. 스타가 되었던 가장 큰 무기가 배우로서는 걸림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제 괘도에 들어선 그녀의 다음 작품이 참 기대된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