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다. 유치하다 같은 평가는 대체로 그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전형적인 그리고 현실적이기 보다는 이상적인 이야기일 경우에 내려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세상과 현실을 조금 더 알아버리게 되면 어린 시절에 분명 감동했던 이야기임에도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는 뻔하고 유치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워호스는 그런 관점에서 뻔하고 유치한 이야기이다.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기적같은 이야기는 분명 판타지에 더 가깝다. 영화의 시작부터 우리는 소년이 전쟁에 참전할 것이고 자신의 말과 다시 조우할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이 될 것을 안다. 그만큼 전형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고전적인 소년의 감성을 갖고 있는(그 감성은 애석하게도 현시점에서는 지극히 클레식하다) 스필버그는 이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만들어냈다. 스필버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꾸 가슴은 끌려가는데 나의 이성은 그 끌림을 용납하지 못하고 제어하려고 한다. 마치 이 이야기에 뭉클하면 지금 같은 시대에 바보 같다고 할 것처럼

스필버그는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80,90년대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워호스와 정서적으로 맞닿은 부분이 많았다. 올웨이즈, 8번가의 기적, 태양의 제국, 미지와의 조우 등은 장르와 이야기는 다르지만 정서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소재는 특별하지만 다분히 전형적이고 판타지스럽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런데 당시의 이 영화들은 내 인생의 영화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하지만 워호스는 자꾸 밀어내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차이점은 단 하나가 아닐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이런 감동을 소비할, 허락할 여유가 없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버렸고 그래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버리게 만든 것이 워호스였다.

생각해보면 올웨이즈를 보면서 사랑의 모습은 저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8번가의 기적을 보며 우리 동네에 그런 기적이 있기를 기원했다. 태양의 제국에서 주인공 소년의 아래로 추락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밤마다 떠올렸고 미지와의 조우에서 어딘가에 지구인이 아닌 미지의 그들이 꼭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어느 때까지는 이런 감정이 소중한 자산이라 여겼다. 하지만 무뎌지고 무뎌지고 무뎌져 어쩌면 감정의 울림마저도 제어하려는 냉정한 어른이 나도 모르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서글픈 영화가 워호스였다.

딸아이가 자막을 빠르게 읽어낼 나이가 되면 워호스를 보여줄 참이다. 30대 중반의 아빠와는 다른 감동을 녀석은 갖게 되리라 기대한다. 내가 80,90년대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과 녀석은 어떻게 다르게 느낄까? 많이도 궁금하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