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착하고 능력도 출중한 하지만 현재는 비루한 이가 어떤 계기로 인한 갱생과 재활, 서로 소원하거나 미워했던 가족, 연인과의 화해는 장르와 이야기 구조를 달리하면서 영화 속에서 항상 등장하는 아주 고전적인 테마다. 이 테마의 빈번한 등장은 이 이야기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리얼스틸은 이 2가지 고전적인 테마를 기본으로 하면서 색다른 로봇복싱이라는 디지털 소재를 가져왔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과 진행은 지극히 같은 주제를 갖고 있는 록키, 오버더탑 같은 스포츠영화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스포츠 장르 만큼 이 주제를 잘 드러내기 쉬운 장르도 없는 듯 싶다) 그런데 이 뻔한 주제를 아주 미려하게 구성해서 결론이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뭉클한 감흥을 주고 있다. 새롭고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출도 대단하지만 리얼스틸처럼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에 대한 연출도 어렵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갱생, 가족애를 주제로 하는 영화는 감정의 과잉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록키나 오버더탑도 마지막 장면에서 어때 엄청 슬프잖아. 감동적이잖아라는 과잉이 많다. 하지만 리얼스틸은 담백하다. 찰리켄튼이 아들 때문에 엉엉 울면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지도 않고, 아들인 맥스가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 포효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여주인공인 베일리가 켄튼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격정적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담백하다. 하지만 그 지점이 리얼스틸이 신파로 빠지거나 감정의 과잉으로 작위적인 감흥을 주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특히 묵묵히 기다려주고 지켜 봐주고 응원해 주는 베일리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이 영화의 안정감의 토대다.


로봇이 등장하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영화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시골배경과 배경으로 깔리는 alexi murdochall my days는 이 영화의 감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로봇과 몇 가지 아이템들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경들은 지극히 옛스럽다. (2020년이 된다고 해도 지금과 크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조금 차이가 있지만 스팀펑크스럽기도 하고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이 영화의 또 다른 큰 매력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 한마디 못하는 로봇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이러한 감성에 기댄바 크다. 맥스와 로봇과의 교감(?) 그리고 이어 켄튼과 로봇과의 일체를 통한 결말은 그래서 참 영리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리얼스틸은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지금은 내가 비루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내가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가꾸어가는 희망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날까지 계속 꿈꾸게 될 주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또 반면 식상할 수 있지만 리얼스틸은 참신한 소재를 토대로 이 희망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영화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