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던가? 무협 영화가 한국을 그리고 아시아를 쓸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늘을 나르고 땅을 가르며 현란한 옷자락과 검법과 권격을 보고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치한 영화들 중에는 우리의 의식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고전들이 있다.

 

내가 무협영화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작품은 왕가위의 [동사서독]이지만 스쳐 지나가다 본 서극 감독의 [신용문객잔]을 다시 보니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신용문객잔]의 무대는 사막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신용문객잔]이라는 여관이다. 이 제한된 공간에서 권력을 가진 환관과 그의 안티세력과의 긴장과 대결의 구도는 흥미진진하다. 뻔히 서로를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아닌척하며 대세를 보고 상황을 살피는 그들의 에피소드들이 참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극의 재기발랄함은 극을 잘 이끌고 있고 바로 그 점에 한 때는 홍콩 영화의 스필버그였던 그의 힘이 느껴진다.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이 좋고 방대한 무협지의 이야기를 두 시간 가량의 영상에 짜임새있게 담아낸 실력도 남다르다.

 

서극을 상업 영화의 귀재라는 점에 이견을 달리하지는 않지만 서극의 [신용문객잔]을 필두로 탄생한 신무협의 열풍들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대단함이 느껴지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00년 11월 6일에 쓴 글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