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제 개봉하고 있는 [단적비연수]는 관객과 평론집단 양쪽에서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의 흥행에는 미치지는 못할테지만 아마 흥행작이 될 것은 확실하다. 마치 [비천무]가 혹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일까? 왜 그 같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는 것인가? 평론가도 그리고 관객도 영화에 침을 뱉는데도 영화는 왜 성공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규모의 경제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제작비와 대규모의 마케팅속에서 분명하게 [단적비연수]는 현시점의 문화의 중심에 있다. 대중은, 현 시점에서의 대중은 [단적비연수]를 이야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봐야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것이 바로 현시기의 문화다. 대중문화! 문화의 접촉 매체가 TV와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7-8할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단적비연수] [비천무]를 보지 않으면 현 시점의 문화적 흐름에서 도퇴된다는 불안감이 관객을 들게 하는 요인이며 대단위의 마케팅은 그것을 부추긴다. 영화를 보러 좌적에 몸을 눕히는 나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영화가 아니길래 그럴까? 어디 봐주마!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단적비연수]는 그리 잘된 영화도 그리고 그토록 여론의 집중포화를 봤을 정도의 영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는 산업이라는 관점에 대한 쟁점은 논외로 하고 영화가 갖는 산업이라는 측면을 생각할 때 [단적비연수]의 가치는 기대 이상이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 동안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영화가 있었던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단적비연수] [쉬리]에서 좀 더 발전된 해외에서 팔릴 수 있는 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아주 한국적이지는 않은 토테미즘적인 공동체와 멜로의 주된 골격이 그렇고 현란한 전투신이 그러하며 이미숙과 설경구의 캐릭터는 분명 경쟁력이 있다-벌써 [단적비연수]는 기획안만으로 해외에서 몇 차례 계약을 성사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단적비연수]는 그렇고 그런 멜로와 [은행나무 침대] [쉬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지만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또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비록 작품의 수준은 기대 이하지만 [단적비연수]가 가지고 있는 범세계적인 경쟁력은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더불어 한국영화가 가지고 있던 소재의 제약에서 [단적비연수]는 일보 전진해 있다. 물론 그것이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서 성사될 수 있는 원시공동체의 판타지적인 세계라고 할지라도 주된 흐름이 멜로라고 하더라도 배경과 전투 장비,의상에서 분명 [단적비연수]는 일보 전진해 있다. 한국영화의 컨텐츠의 다양함이라는 점에서도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분명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그렇다는 답은 쉽사리 던질 수는 없다. 그것은 크게는 자본의 논리와 경제체제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로 당연하게 귀결이 되기 때문이다. [쉬리]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시장의 규모를 활성화 시켰다는 점-에서 분명 강제규 필름은 한국영화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제규필름의 희비는 곧 한국영화의 제작관행의 길을 좌우할 정도의 힘이라고도 생각한다. 그것은 강제규필름의 제작 작품에 한국 제작사들이 따라가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적비연수]는 분명하게 망해야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왜냐면 한국영화가 거대 제작비와 마케팅 하려한 스케일 흥미있는 소재로 범벅이된 작품들만이 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마 [단적비연수]는 망할 것 같지는 않다. 바로 그 점에 자본의 무서움과 관객의 야속함이 느껴진다.

 

[단적비연수]는 자본의 논리로서 그리고 산업으로서 이야기하면 미워할 수 없는 영화이지만 한국영화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닐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적비연수]가 그리고 강제규 감독의 만들어낸 한국영화의 관심과 넘쳐나는 영화 자본의 자장안에서 흥행 관행에서 묶여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만의 그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런지?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이다.

 


[단적비연수]를 보는 내내 비교가 되던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였다. 물론 [단적비연수] [원령공주]와 같은 메세지와 작품성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인물들의 애정의 관계는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기식의 억지이며 [쉬리] [은행나무 침대]의 공식들의 차용은 진부하다. 또한 초등학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듯한 대사는 유치의 극치다. 더불어 마지막 은행나무씬은 정말 그 동안의 한껏 쌓아온 긴장을 싸그리 무너트린다. [이미숙] [설경구]의 연기만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힘이다.그래서 무척이나 아쉽다. 만일 개인의 욕심-적의 비에 대한 사랑-과 자진이 속한 조직안에서 갈등하는 적과 그와 상응해서 개인의 생명을 조직을 위해서 맞바꾸어야 하는 비의 내면을 좀 더 깊게 다루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도 같은데 말이다. ! 잊고 있었다. [단적비연수]는 돈을 벌기 위한 철저한 기획 영화라는 것을....^^ 

2000년 11월 25일에 쓴 글: 아마 이즈음부터 산업과 영화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