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련 웹사이트를 뒤적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야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배 감독들의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 패러디라는 의혹(?)에 대해 <안노>의 답변이 적혀있던 페이지였는데 그곳에서 <안노>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인생은 꼴라쥬>. 다시 말하자면 애니메이션도 그리고 영화도 더불어 인생도 전부 다른 누군가가 아니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와 의미와 조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합에서 꼴자쥬처럼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지 완전무결한 창조는 없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위험한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긍정이 가는 발언이다. 만일 나를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면 어느 학교 다니고 안동 권씨 가문의 몇 대손이며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정도? 역시 나 혼자만의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회와 관계된 더불어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조합이다. 그런 면에서 역시 긍정이 가는 말이다. 과연 자기 자신은 독창적인 이미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이가 몇 이나 될까? 자신이 동경하는 누군가가 되기 위해 갈망하고 이미지화된 브랜드로 자신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더불어 자신의 꿈과 가치관까지도 세상 공통적인 또한 주류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보고 <안노>의 그 외마디 외침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오직 < 존말코비치>는 사회에서 인정 받는 또는 주류의 인물안에서 행복하고 그를 통해서 행복을 얻는다. 주인공의 사소한 꿈인 인형극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존 말코비치>안에서 이루어지며 그의 부인 카메론 디아즈 또한 <존 말코비치>안에서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다. 그것은 지금 현 새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은 없으며 오직 세상이 강요하는 그래서 위장된 정체성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강요된 또한 사회에서 전이된 정체성안에서 우리는 행복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마지막에 두 여인이 <존 말코비치>라는 대상을 포기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는 것은 작가의 사회에서 이양된 정체성을 거부할 때 진정한 사랑도 행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시 그의 딸(?)의 의식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본다. 근친상간적인 도덕적 잣대와 비견해서도 주인공으로 치환된 세속의 우리는 영원히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미지로 사랑을 이루고 더불어 행복을 이루려한다. <존 말코비치>되기는 기발한 소재로서 현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치명타를 날리는 역작인 듯 하다.

2000년 12월 1일에 쓴 글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