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첨밀밀>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썰렁한 자취방에 들어온 외로움 탓인지도 모르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리고 다시 보리라 다짐을 했었고 며칠 전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왠일인가? 또 다르게 영화가 보인다.

 

<첨밀밀>을 보고 들었던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고자 한다.<러브레터>가 한국에서 개봉한 이후로 이상하게 멜로의 경향이랄까? 예전 멜로물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선형적으로 구성을 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얼마나 절절하게 그 영화를 접하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느냐가 멜로물의 지상과제였다. <접속> 이후로 많은 멜로물이 제작이 되었었는데 <약속>,<편지> 등이 아마도 그 대표작들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되는 멜로물은 두자로 영화명을 지어야 한다는 장르 공식을 만들어내며 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러브레터>이후로 한국 멜로물에서는 편하게 멜로 영화를 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있다. 비선형적인 구성에다 온갖 단서들을 흘리다가 마지막에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스릴러적인 구성들을 차용하고 있다. <동감>, <시월애>등이 아마도 그 대표작들일 것이다. <첨밀밀> 또한 그러하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이어진 비선형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제 멜로 영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던가 <러브스토리>처럼 두 주인공의 엄난한 그리고 신파적인 이야기만으로는 관객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든 것일까?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으로 여기는 <8월의 크리스마스>도 비선형적인 구성은 아니지만 멜로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러냄을 철저하게 숨기고 단순하게 디테일한 일상과 표정으로 더 큰 감정의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꼭 집어서 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소설과 영화 등등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영화속 사랑의 진정함은 대개 비극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희생이라던가 지고지순한 일편단심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는 사랑은 운명인가? 라는 것이다. <첨밀밀>에서는 여소군과 이교의 사랑이 정해진 운명이라고 이야기 한다. 처음에 홍콩에 도착하는 씬을 끝과 처음에 이음으로서 그 둘은 정해진 인연임을 이야기 한다. 운명은 우연에서 기인한다. 무심코 간 장소에 자신이 사랑하게 될 사람이 존재하고 공존하고 사랑하고 그것이 바로 우연이 기반한 사랑의 운명일 것이다. 영화속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처음 그 둘이 홍콩에 도착할 때 같은 기차에 탓던 우연은 여소군이 맥도날드에 간 우연으로 만나게 된다. 현실의 고단함으로 헤어진 그들이 다시 서로의 배후자를 배신할 것을 결심하는 키스신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등려군의 사인을 자켓에 받은 여명이 걸어가는 모습을 이교는 극도로 자신을 제어하며 사랑의 감정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그 감정을 체념하며 자동차 핸들에 기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로 이교는 여소군과 다시 사랑을 시작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물론 이것은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여소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교가 핸들에 머리를 기대는 순간 자동차 클랙션이 우연하게도 울린다. 다시 뒤돌아 온 여소군은 진한 키스를 이교와 나누고 다시 그 둘의 사랑을 시작한다. 이 또한 우연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이 나오는 tv를 둘이 무심코 지켜보던 과정에서 그 둘은 전혀 예상하지 않게 우연하게 재회한다. 이것도 우연이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사랑의 이룸은 우연에서 기인하다. 이러한 영화속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당신은 서로가 모르게 우연하게 어딘가에서 스쳤을 수도 있고 당신이 당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 그를 또는 그녀를 우연하게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 ... 그렇기에 사랑은 우연에서 시작된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군^^

 

여기까지가 내가 <첨밀밀>을 다시 보기전까지 들었던 생각들이다. 그런데 다시 영화를 보고는 이내 난 <진가신>감독이 말하는 바는 사랑이 아니라 다분하게 정치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홍콩과 중국의 현재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먼저 여소군과 이교 그 둘은 홍콩으로 온다.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 돈을 위해서 홍콩으로 온 그들은 철저한 본토인이지만 홍콩인을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의 메카인 아메리카를 동경한다. 다시 말하면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돈이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까지 흔드는 것이다. 맥도날드에 열광하는 여소군이나 조폭오빠(?)의 등에 새겨진 미키마우스에 감동하는 이교는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인이나 홍콩인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들이 본토가수인 등려군의 팬이라는 것으로 입증이 된다. 처음 그 둘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계기도 등려군의 음반 장사가 실패하면서 이고 다시 만남을 가진 계기는 등려군의 사인이었으며 미국에서 재회하는 계기도 등려군의 사망소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둘의 가슴안에 숨겨진 중국 본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절대로 서로에 대한 사랑처럼 비켜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현실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맺어지는 것은 그리고 그토록 엇갈린 우연으로 다시 재회하게 되는 순간에 그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첨밀밀>은 그렇게 쉽게 볼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난 멜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제일 싫어하는 장르가 멕라이언이 나오는 로맨틱 코메디물이다. 물론 멕라이언은 좋아한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그런 나의 생각이 송두리채 무너진 영화가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첨밀밀>도 그에는 비견할 수 없지만 좋은 영화로 내 리스트에 올려놓으려고 한다. 또 황당한 생각은 한다. 한국 대표로 <8월의 크리스마스> 일본 대표로 <러브테터> 홍콩 대표로 <첨밀밀>을 붙이면 누가 이길까?^^

2001년 1월 16일에 쓴 글: 마지막 글귀는 웃긴다 진짜.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