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Ani In Korea

2010. 12. 19. 17:57 from 과거의 영화이야기

필자가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일명 Japanimation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나디아]였다. -국적이 일본인 작품을 인지하고 접한- 물론 당시 [나디아] MBC에서 저녁 시간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방영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본 것은 MBC의 편집된 [나디아]가 아니라 일본 NHK를 통해 본 편집되지 않은 [나디아]였다. MBC에서 방영된 [나디아]는 야한 장면과 잔인한 장면들을 들어낸 한국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편집된 반쪽짜리 작품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름의 내공이 쌓인 친구의 집에서 나는 주말에 주로 그 친구가 모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몰아서 보곤 했다. 당시에는 자막이 없이 일본 방송을 바로 녹화한 것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설명을 유추해 나름의 내용을 이해할 뿐이었다.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일본에 대한 어설픈 반일 감정은 애니메이션에까지 영향을 미쳐 일본 애니에 대한 흥미는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후 대학에 입학해서 일본 애니의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작품이 바로 [안노 히데야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었다. 일반적인 메카물이라는 장르 안에서 성경과 철학사조가 얽혀있고 인간 내면을 고찰하는 [에반게리온] 앞에서 숨이 턱하니 막혀옴을 느꼈다. "이게 애니메이션이라고? 정녕 이것이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이란 말인가?" 당시의 내 생각이 그랬다. 그 후 나는 일본 애니의 세계로 인도되었고 여러 작품들을 탐닉하고 나름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점점 그 시스템의 강건함과 거대함에 경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름의 색깔을 가진 수 많은 작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그 작가들이 셀 위에 혹은 컴퓨터 그래픽 위에 펼치는 메시지와 세계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리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미래소년 코난], [엄마 찾아 삼만리], [골드 라이탄], [당가도A-한국명으로는 스타에이스], [마징가] [과학수사대 가차맨-독수리 오형제] [그랜다이저] 등등의 나의 어린시절을 사로잡았던 거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일본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무서운 시장논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창작 애니메이션의 시작과 한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후 한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은 OEM이라고 하는 하청시스템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가격경쟁에서 한국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과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시장은 공중파방송이다.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타이틀을 될 수 있으면 낮은 가격에 공급 받을려고 할 것이고 따라서 한국의 방송국은 한국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프로그램 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일본 애니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시장이 없어진 한국 애니는 대부분 OEM의 하청시스템으로 재편되게 된다. 한국은 OEM 시장에서 세계3위의 대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 애니메이션보다 휠씬 낮은 가격으로 애니메이션을 공급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천황이라고 불려지는 [데즈카 오사무]에서 기인한다.

 

[데즈카 오사무]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의 작가이다. 일본에서 그의 위치는 천황이라고 불려도 모자람이 없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철완아톰]을 일본 애니사상 최초로 1963 11일에 공중파에 쏟아올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공중파 방송에 [철완 아톰]의 계약단가에 있다. 절대 가능하지 않은 저가에 가격을 체결했고, 그 후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방송국 납품 가격은 저가의 시스템으로 굳어지게 된다. 더불어 3년 동안 193화를 납품해야 하는 살인적인 [철완 아톰]의 작업량은 예술가인 애니메이터를 애니메이션 노동자로 만들게 된다. 3년의 기간 동안 [데즈카 오사무]가 설립한 [무시프로덕션]에서 2명의 애니메이터가 과로로 숨졌고 1명의 애니메이터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최초와 도전이라는 업적 뒤에는 이렇게 살인적인 작업량과 저가의 작품단가라는 아이러니한 배경이 존재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계속된 열악한 환경을 만들어냈고-[미야자키 하야오] [데즈카 오사무]의 추도식에서 추도문을 읽으면서도 이 상황을 성토했다.-한편으로는 열확한 환경을 극복하게 만들면서 일본 애니 시스템을 강건하게 했다.

 

[철완 아톰]이후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방송 납품 가격은 저가격으로 굳어졌고 이는 해외수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로 이 같은 배경이 창작 한국애니메이션이 하청시스템으로 굳어진 매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재미있는 것은 단순하게 이러한 열악한 산업적 환경이 자기진화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리미티드 기법이라고 하는 일본 애니의 아주 독특한 표현양식이다. 리미티드 기법은 앞서 언급한 살인적 작업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세일러문에서 각 소녀세일러 전사들이 변신하는 장면이라든가 메카물에서 로봇들이 변신, 합체하는 장면이 바로 이 리미티드 기법의 전형이다. 즉 매 회마다 소녀전사들은 혹은 로봇들은 변신이나 합체를 한다. 그리고 이 때의 그림은 매 회 동일하다. 즉 앞에 만들어두었던 변신장면을 매 회 사용함으로써 작업량을 줄이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또한 변칙적으로 1초에 24프레임을 돌리는 풀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 보다 낮은 프레임을 돌리기도 했다.이렇게 환경에 기인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표현양식은 일본 애니 고유의 특성이 되어버렸고 이 표현이 또 일본 애니의 매력적인 점이 되어버린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수익 채널의 다양화를 꽤하게 된다.공중파방송의 납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중파방송을 통해 얻어진 작품의 인지도와 관심을 확장하게 된다. 즉 수익의 채널을 다양하게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선라이즈]사는 애니메이션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완구류들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게 된다. 더불어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캐릭터 관련 상품들을 통해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다른 하나는 방송시리즈에서 확장된 극장판을 선보이는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카우보이 비밥] [천공의 성 에스카플로네]처럼 방송에서 얻어진 인기를 바탕으로 극장판을 제작하고 개봉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OVA라는 일본 특유의 비디오 시스템이다. OVA(Original Video Animation)는 극장 상영과 TV 물이 아니라 오직 판매만을 위해서 제작되는 비디오물이다. 즉 특정 장르나 인기 작가의 경우 OVA를 통해서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에 있어서 대단히 하드고어, 하드코어적이다. 일단 비디오물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저렴하고 더불어 일본 애니시장에서 표적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에서도 부담이 없다. 더불어 렌달의 개념이 아니라 판매의 개념이라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이렇게 열악환 환경속에서 자기진화한 일본 애니는 미국의 디즈니와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애니시장의 자기진화는 외부 환경에 대한 당연한 반사적 행동이었지만 또 이것이 일본 애니의 강력한 경쟁력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일본애니의 특수한 더불어 강력한 시스템을 좀 살펴보자.먼저 오타쿠라고 하는 일본 특유의 매니아집단을 들 수 있다. 오타쿠라는 단어상의 뜻은 음험한 놈으로서 방에 틀어막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이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일본에서 발행한 살인사건에서 기인한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그 범인의 집을 수색하니 온갖 종류의 많은 만화단행본과 비디오물이 나왔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보통이상으로 집착하는 이를 오타쿠로 명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오타쿠에 대한 개념은 현재는 별 효력이 없다. 그것은 바로 오타쿠야 말로 현재 일본 애니시장의 인터렉티브한 소비층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오타쿠들은 단순하게 작가가 내놓은 작품을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작가 혹은 작품과 소통의 채널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원래 작품의 등장인물과 모티브만 가져와 각자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코스프레 라는 집단적 행사를 통해 작품을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변모시킨다. 또한 그들은 시장의 마지막 보루로서 시장을 최후까지 유지하고 더 나아가 시장을 발전시킨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야키]도 오타쿠가 아니였던가 말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애니시장의 치열한 경쟁이다. 애니메이터를 지망하는 이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은 0.1%라고 한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은 창의적이며 능력이 충줄한 작가들이 시장에 탄생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시장에 나온 작품 중에 성공한 작품에 대해서는 수 많은 수익이 따르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는 자신의 꿈과 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이 같은 정당한 대우는 유능한 인력을 계속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게 한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바로 문화라는 꿈을 볼모로 우리의 애니메이터들은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다. ? 문화를 업으로 하고 꿈으로 하는 이는 가난해야 하고 배고파야 하는 것인가? 물론 시장의 한계는 존재한다. 더불어 수익이 없으면 당연히 배고플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 같은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점도 크다. 이 같은 당연함은 분배에 있어서도 작품의 핵심이라고 하는 애니메이터가 소외되는 경향이 강하기도 하다. 즉 투자사나 최고 계층만 높은 수익을 얻고 실재로 작품을 창조한 애니메이터들은 여전히 배고프다. 배고픈 것을 좋아하는 이는 세상에 없다. 정당한 대우가 있을 때 유능한 우리의 애니메이터들은 자신의 열정과 꿈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유능한 인력의 진입을 가능하게 한다. 

 



다음은 일본 애니 시장의 원천적 소스가 될 수 있는 만화시장의 강건함이다.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그 괘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자주 만화가 애니로 탄생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한국시장과 아주 상이한 점이 관찰되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 만화 시장에는 대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보고자 하는 작품은 모두 구매해서 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만화방과 만화대여소가 있다. 이는 출판사와 만화방 대여소 주인은 수익을 얻지만 인세를 받는 작가에게는 별 돈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어느 작가가 쓴 글 중에 작품이 너무 좋아서 대여소에서 10번도 넘게 빌려봤다고 팬레터가 왔는데 고맙기는커녕 욕이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즉 스타작가라고 해도 대여소와 만화방이 존재하는 이상 수익은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는 만화잡지들-여러 작품들이 연재되는-의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몇 백원정도라고 하는데 이 중에서 인기있는 작품들을 단행본으로 내놓는다. 일본 독자들은 모두 이 작품을 구매한다. 매니아층들은 3권을 구매해서 하나는 소장용, 하나는 친구들에게 소개용, 하나는 자신이 갖고 다니면서 읽는 휴대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같은 산업적 환경은 일단 작품이 하나 히트를 치게 되면 작가에게 커다란 수익을 제공한다. 히트 된 작품은 다시 애니로 제작되고 관련 라이센싱 상품들이 나와 수익을 극대화 시킨다. 현실적 부가 해결된 작가는 심혈을 기울여 다른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스타 작가도 힘든 판에 아직 히트작이 없는 작가는 작품의 질보다는 초스피드로 작품을 완성해서 다작을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작품에서 퀼리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대중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작품의 탄생 확률은 극도로 작아지게 되고 이는 결국 애니메이션 소스들이 빈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겉핡기 식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바라보아도 역시 국내 실정과는 꽤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일본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은 거대 자본과 거대 유통망으로 승부하는 디즈니보다는 일본의 상황이 훨씬 벤치마킹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즈음에서는 역시나 체념조의 부러움만의 한숨만이 나온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믿고 또 성공에 대한 강한 바램이 있다. 실제로 [하얀 마음 백구] [큐빅스]등은 시장에서 꽤 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진하기는 하지만 [마리이야기]는 세상 어느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색감과 질감으로 그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 물론 필자는 애니메이터도 아니고 한국애니메이션의 성공을 바라는 한 관객 혹은 소비자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들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소비자로서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다층적인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술력은 결코 일본과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제작비에 차이일 뿐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 자체일 것이다.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굉장히 특이한 점은 상업적 코드와 심오한 문화적 코드가 혼재해 있는데 그 혼재의 결과물이 꽤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흡입력 강한 네러티브 뿐만 아니라 자연친화사상과 이상화된 공동체들의 개념이 혼재해 있으며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의 경우 최첨단의 미래사회를 현란하게 보여주면서도 심오한 사이퍼펑크의 향기를 날린다. 최근 작품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은 굉장히 정적인 바둑을 역동적으로 바꾸면서도 라이벌 간의 심리적인 갈등, 그리고 소년의 성장을 그리고 있으며 [12국기]의 경우 매력적인 판타지속에서 주인공 소녀가 올바른 정체성을 사유함으로써 왕따를 양상하는 현 시대의 대안까지 발견하게 한다. 클램프 원작의 [쵸비츠]의 경우는 굉장히 섹슈얼한 작품의 색깔을 띄면서도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를 질문하게 한다. 개인적인 취향인지는 몰라도 이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색은 디즈니의 미국적인 휴머니티와는 다른 영역을 형성하며 상업적 재미를 주면서도 정신적으로 향휴할 혹은 고민할 화두들을 던진다. 현란한 비주얼과 자극은 계속되면 지루함을 갖게 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관객의 정신세계를 침투하고 그 안에서 관객이 고민할 무엇을 만들어주면 그 때 해당 작품은 단순한 킬링 타임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관객의 상호교감하는 대상이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애니는 바로 이렇게 상호교감할 수 있으면서도 상업적 코드와 나름의 철학이 담긴 다층적인 작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우리를 찾아 온 [마리 이야기]는 꽤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매력이 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인 유년시절의 추억과 현실에 의해 변모되는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잘 형상화하지 못함에 있다.

하지만 [마리 이야기]는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혁명을 예감케 한다.

 


현재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제작 중에 있다. 해외에서도 높은 주목을 받았던 [김문생] 감독의 [원더플 데이즈] 오우삼 감독의 라이온룩과 레인보우스튜디오가 합작한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황효선]감독의 [아크], [권재웅] 감독의 [엘리시움] 플래쉬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극장까지 몰고 가려고 하는 [조범진] 감독의 [아치와 씨팍], [천계영] 작가의 인기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민경조]감독의 [오디션], [하얀마음 백구]의 제작팀이 의기 투합해 도전하는 [오세암], [장선우] 감독의 [바리공주], [박재동] 감독의 [오돌또기], 최고의 테크니션 [김성수]감독의 [리니지]가 바로 혁명에 도전하는 작품들이다. 작가주의 계열의 애니메이션도 있고 영화감독이 도전하는 작품도 있으며 플래쉬와 만화단행본의 성공에 기인한 작품도 있다.

 

필자는 한국애니메이션이 가득 물을 머금은 댐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제 댐이 무너져 노도와 같이 물이 흘러가듯 이 즈음에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는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현재까지 응집된 수 많은 애니메이터들의 열정과 노력과 기술이 정점에 도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고부가가치의 차세대 중요 문화산업이라는 말로 시장을 지속시키기에는 한계점에도 도달했다. 이 즈음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작품이 하나 정도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리이야기]가 가능성을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애니시장이 존재함을 입증했으니 이제 앞서 언급한 혁명을 꿈꾸는 작품들 중에 꼭 성공한 작품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믿음을 가져본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노력 많이 했으니 많이들 봐주세요.' 라는 말을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이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혹은 함량미달이면 그렇게 호소할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며 자유로운 문화소비를 하는 관객들의 문화자유의지를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즈음에서는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만이라도 지금은 좀 부탁을 하고 싶다. 적어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작품이 여러분과 조우할 때까지 지켜보시고 한국애니매이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꼭 극장에서 보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풍류일가 컬럼리스트 활동 할 때 썼던 글, 한때 애니메이션도 참 관심이 많았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