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 감독들과의 만남을 위한 능동적인 노력, 그 노력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감독들 그리고 영화를 접했는가는 씨네필과 영화매니아를 만든다. 이에 따라서 본다면 필자는 씨네필, 영화매니아는 아니다. 필자의 영화경험의 시작은 헐리우드 영화였고 여전히 헐리우드, 주류의 영화형식에 익숙한 헐리우드 키드가 필자에게는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물론 영화라는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서 씨네필 혹은 영화 매니아가 우위에 있고 주류영화를 즐김이 저차원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경험했고 경험하는 영화향유 환경을 보면 왠지 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씨네필 혹은 영화 매니아

필자는 영화비평동호회의 공동시샵으로 2년이 넘게 활동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와서 영화에 대한 소통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곳이다. 많은 소중한 경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기억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며,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이 시대의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다양한 씨네필과 매니아들을 만난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과 그것을 통해서 고전영화부터 다양한 국가의 영화들까지 섭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필자도 다양한 영화들을 보기 위해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영화적 경험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고 있었다.

 

편을 가르고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영화팬들과 그들은 아주 다른 점이 있었다. 하나는 그들은 다양한 영화문법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열린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익숙한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도, 난해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도 기꺼이 해당 영화 감상의 대열에 동참한다. 다른 하나는 진지하게 영화의 의미와 영향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러한 의견의 피력과 소통은 PC통신부터 시작되어 인터넷을 통해 통합되고 강력해져 잠재적인 건전한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영화문화를 향유하는 한 관객으로 볼 때 그들의 영화경험은 더 풍요롭고 알차다. 그들에게 영화관람 행위는 엔터테인먼트이기 보다는 삶의 중요한 정신적 경험이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의 의미를 재생산함으로써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모든 영화팬들 혹은 영화를 향유하는 모든 이들은 씨네필 혹은 매니아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문화향유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되고 그 결과 또한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있어서 우리는 애초부터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영화적 경험을 할 기회가 제한되어 왔고 그에 따라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눈은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편식을 강요당하고 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헐리우드산 영화의 세계적인 맹위는 우리나라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동부터 헐리우드산 영화는 산업적 영화의 표본이었다. 이에 따라 세계영화는 상업적인 헐리우드 영화적양식 혹은 공식에 의해서 대부분 제작이 되었고 한국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본 영화를 떠올려보자. 거의 대부분이 주류 헐리우드산 영화가 아닌가? 그 중에 과연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감독들의 영화들과 제3세계국이나 유럽영화들은 몇 편이나 되는가? 아마도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영화적 눈은 헐리우드 영화 형식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결국 헐리우드 영화 형식에 빗겨난 영화들에서는 재미도 감동도 느끼기가 힘들게 되어버린 것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의 모든 영화적 창조를 소멸시켰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 극장에서 TV에서는 당연히 시장성이 있는 헐리우드 영화들이 지배되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편식의 강요에 맞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지금은...

자국영화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한국의 상황에 있어서 한국은 좀 예외가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헐리우드 영화형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며 우리들은 여전히 헐리우드 영화형식에만 익숙하다. 작년 일련의 예술계열 영화들이 실패한 것도 결국 영화형식이 헐리우드 영화와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즉 쉽게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다. 결국 산업적으로는 스타가 등장하고 주류 장르영화와 헐리우드 영화양식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로 재편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러한 영화만을 향유하면서 점점 영화를 향유하는 눈과 다양성이 편협화되는 것은 아닐까? 현재 산업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 또한 다양성의 소멸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향후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도 현재의 상황은 심각하게 고려할 대상이다.

 

-다양성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하여

기업차원에서 그리고 비즈니스 차원에서 앞서 언급한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명아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또한 이러한 영화를 흥행에 대한 리스크를 안으면서 제작하고 와이드릴리즈로 개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의 영화관객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다.

시장은 소비자들의 구매패턴과 트렌드에 의해서 재편된다고 할 때 결국 관객들의 구매패턴의 변화와 다양한 영화들의 선택은 한국영화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시네마테크나 예술영화전용관이 만석이 되고, 다양한 영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어 CGV나 메가박스에서 다양한 국가의 특색있는 영화들이 상영이 된다면 그리고 이러한 욕구들이 지속되는 것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기억한다. 부산 남포동과 부천 복사골을 가득 메웠던 열혈영화팬들을... 그들은 진심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조금 더 다양한 영화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50% 가까운 점유율을 만들었던 실제적인 주체인 관객들이 있다. 비록 그들이 헐리우드 영화적 형식에 익숙할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오직 엔터테인먼트로서 영화를 대할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좋은영화를 알아보는 현안을 갖고 있다. , 잘 만들어지고 진심이 내재되어 있으며, 의미 있는 영화들을 알아볼 수 있다. 작년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등의 영화들을 살리기 위한 운동에 중심에도 이 관객이 있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이제 조금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희망을 품고 이제 우리의 관객들이 좀 더 다양한 영화향휴 활동을 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먼저 블록버스터 급의 큰 영화도 좋지만 영화에 대한 선택의 폭을 좀 넓혔으면 한다. 큰 상업영화도 좋지만 나름의 의미들을 갖고 있는 영화들도 선택의 대안에 넣어보고 나아가서 극장에서 관람하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 처음에는 난해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점점 자신의 영화적 경험과 사유가 풍족해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난니 모레티의 작품이 자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하는 이탈리아의 영화적 풍토,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한 방송국을 살렸던 유렵의 영화수용력, 끊임없이 다양한 비주류 영화에 관심을 갖는 뉴욕의 예술적 취향이 한국에서도 발현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한국영화제작사를 비롯해 산업을 형성하는 모든 기업들이 나름의 소명을 갖기를 바래본다. 아마도 현재 몇 몇의 스타들에 휘둘리는 영화제작과 상업적 취향만이 반영된 투자상황, 다양성이 상실되어 가는 상황에서 어떤 불만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맞춰가기 보다는 나름의 소명과 자존심을 건 작품을 제작했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크게 투자해 크게 버는 것이 아니라 작게 투자하더라도 알차게 뽑아내는 것 아니겠는가? 리스크를 줄이고 다양성을 높이며, 나름의 소명이 이입된 작품들과 만나게 되기를 바래본다. 진심이 어린, 그리고 치열한 노력이 들어간 작품은 수치나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지만 관객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가끔 예술영화전용관이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가까운 극장에서 상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이런 저런 핑계로 영화 찾아보기를 쉽게 포기해버리는 필자의 게으름이 못내 싫다. 이 글은 그런 필자의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과 영화팬으로서 게으름에 대한 반성의 글이다.

 

3류 극장에서 일요일 마지막 상영을 보고 집으로 걸어오며 다시금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을 떠올리고 감독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 때가 새삼 그리워진다.

지금 보니 왠지 부끄러워 지는 글이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