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오랜만에 형의 목소리를 들었네요. 형에게 사고가 있었던 줄도 몰랐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하는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주 연락하지 못한 무심한 저를 책망했습니다. 어서 쾌차하세요.

 

! 보니-꾼이 벌써 3살이 되었습니다. 곧 형과 저와의 인연도 3년이 되었다는 거군요. 몇 십명이 조금 넘던 작은 영화비평 동호회가 이제 연륜도 있고 회원수도 제법 되는 3년차 동호회가 된 거군요.

다소 오만함이 풍기는 시샵의 결성취지에 이끌려 가입을 했고, 에이젠슈타인과 따르코프스키의 나라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형의 모습을 동경하던 그 때가 벌써 3년전이에요. 운영진이 되고 이런 저런 일을 진행하면서 참 형에게 혼도 많이 났죠.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어요. 공사를 구별 못하냐? 개인적인 감정에 운영자가 휘둘리면 어떻게 하냐?...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저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내가 왜 욕을 먹어가며 운영자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그 순간부터 전 형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나봐요. 영화도 그리고 이 세상속에서 영화의 의미도...

 

언제인가 형이 저에게 그런 말을 했죠? 영화하고 싶으면 결혼도 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라고... 순도 100%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현실과는 결코 맞닿을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라는 의미인거 알아요. 더불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풍토가 아님을 개탄하기도 하셨죠. 이 시대의 영화는 1시간 반 혹은 2시간의 런닝타임 동안 얼마나 오감을 자극하고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가에 몰두하며, 결국은 하나의 상품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기도 하니까요. 한국영화의 활황 앞에서도 형은 항상 팔짱을 끼고 냉소를 날리기도 했고 거침없는 글과 말로 메스를 들이대기도 했죠. 그때마다 저는 또 산업과 시스템의 안정과 활성화만이 예술영화의 발전을 기한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형의 영화를 향한 그 고집과 이상에 매료되기도 했어요.

 

제가 베스트로 꼽는 왕가위를 표절대마왕으로 몰아부치실 때 거품 물며 반론을 하고, 제가 쓴 영화글에 제기한 형의 반론을 역전시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렇게 영화안에서 고민하고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치기어린 생각을 했던 것이 언제인지... 어느 덧 저도 산업속에서 저비용 고효율을 통한 무한 이익의 달성에 매몰되어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지냈나봐요. 영화를 보면서도 즐기지 못하고 흥행이라는 절대결과를 위한 영화의 최적의 조합에만 관심을 갖았는지 몰라요. 물론 영화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굉장이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명이 없고 철학이 없는 모든 것은 의미도 없고 성공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정했던 저의 영화에 대한 철학과 영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사명을 전 그렇게 잊고 지내온 듯 해요. 솔직히 일년 동안 동호회의 운영진으로서, 그리고 영화와 매번 조우하는 팬으로서 너무 제 모습이 한심하네요.

 

언제이던가 술자리에서 형이 그렇게 말했죠? ! 너가 잘 나가는 제작자가 되면 5편은 대박나는 영화하고 1편은 제작비 다 꼴아박는 영화 해라.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지금의 전 맛깔나는 상업영화가 무엇인지도 여전히 모르겠고, 제작비 다 꼴아박을 것을 알면서도 영화를 제작할 철학도 부재중이네요. 치열하게 공부하지 못함과 철학과 사명없이 기계적으로 영화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형이 바라는 저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텐데...형과 통화하고 지금의 제 모습을 잠시 돌아봤어요. 그리고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하지만 낙망하거나 멈추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다시 치열하게 학습하고 저에게 있어 영화의 의미를 계속해서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더불어 형과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공간인 보니-꾼이 영화친구들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볼 생각이에요. 물론 그 길에는 보니-꾼의 소중한 식구들과 존경하고 사랑하는 운영진 누나, 형들이 함께 하겠죠.

 

캠퍼스에서 영화속으로 탐험을 떠나는 이들이 조금 더 훌륭하게 그 탐험의 여정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형이지만 아마 계속해서 영화를 고민하겠죠? 형에게 이야기한 그리고 저에게 다짐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저 또한 저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할게요. 형은 이상주의적인 영화감독이자 교수이고, 전 산업안에서 관객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마케터가 되고자 하는 학생이지만 어쩌면 그 끝은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끝이 무엇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끝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길이 명확하지 않을 때 보니-꾼은 항상 저의 지침이 될 듯 합니다.

 

! 건강하세요.

치악산 자락에서 술 한잔 기울일 날을 기약하며..

이제 편지의 대상인 형은 세상에 없다. 이 글을 쓰면서 했던 다짐도 난 지키지 못했다. 꿈을 고집스럽게 지키던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성공하기를 바랬었고 그 누구보다 그 사람이 형이 되기를 바랬었는데... 안타깝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