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가 개봉되면 수 많은 평가가 이루어진다. 나름의 권위를 가진 신문, 잡지의 평가에서 부터 보기 편한 별점, 수 많은 네티즌들의 아주 개인적인 평가까지 다양하다. 그런 평가들을 보면 모두 저마다의 근거를 갖고 있다. 예술성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둔 평가도 있고, 상업성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둔 평가, 아주 개인적인 성향에 의한 평가까지 실로 다양하다. 영화라는 것이 하나의 매체로서 기능하고, 매체의 특성상 누군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점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의 평가든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수 많은 평론과 평가의 홍수속에서 매번 접하는 영화를 자신만의 눈으로 평가하는 작업들은 다소 부족하지 않다 싶다 . 그 평가가 자신의 영화관을 만들것이며, 자신의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스쳐보는 영화들을 보고 즐기지만 말고 평가하길 기대하며 개인적인 몇 가지 기준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강조하건데 절대 이것이 좋은 방법도, 옳은 방법도 아니다. 다만 영화를 평가하면서 개인적인 영화의 토양을 좀 더 풍족하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예술성과 상업성의 절묘한 조화

"영화는 예술이다"라는 점에서 이견은 없으리라 본다. 더구나 영화는 5대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시, 음악, 회화, 조각, 건축이 모두 포함된 종합예술이다. 내재된 컨텐츠의 규모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최고의 예술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단히 상업적인, 산업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돈벌이가 되는 매체가 된 것이다. 영화를 중심으로 주변에 위치한 배우, 음악 산업까지 아우른다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궁극일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에서 예술성이 높은 영화들은 대중의 몰이해를 부르고, 이는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예술성과 상업성은 양 극단에 위치한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즉 상업성이 뛰어난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치부되기도 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는 소수의 집단에서의 열광으로 끝나고 만다. 가끔 예술성과 상업성의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하는 영화들이 있지만 결국 그 영화도 어느 한 극단까지 전진하지는 못하고 중간정도의 지점에서 영화를 마무리한 영화일는지 모른다.

 

예술성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개인적인 지식이 일천 하여 깊이있게 이야기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술성이 뛰어난 경우, 분명 수 많은 관객과의 조우라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분명하다. , 아무리 예술가들이 칭송하는 영화도 수 많은 관객이 외면하면 그 자체로 의미성은 떨어진다. 가끔 어떤 영화에 대해 평론가들의 리뷰를 읽다보면 도대체 이 지루하기짝이 없는 영화가 그렇게 대단한 의미와 기교가 담겨진 영화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즉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들은 영화 전문가들만을 위한 영화인 경우가 많다. 물론 한 작가(감독)의 혼과 창의성에 의해서 태어난 영화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는 않지만, 자기만 알아먹는 영화라면 집에서 혼자 보고 만족하면 족하지 않을까? 영화 좀 공부한 사람들끼리 만들고 보고 공유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로 이러한 근거가 상업성의 미덕일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상업성의 가치다. 하지만 배우들의 외모에 대한 칭송이나 가십거리, 액션의 탁월함, 비주얼의 화려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과 삶과 사회와 같은 개념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인간과 삶과 사회와 같은 개념들을 통찰하는 영화는 대부분 예술적이기는 하지만 상업적(대중적)이지는 않다.

 


이처럼 예술성과 상업성은 관객과의 조우, 관객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서 각각 큰 핸디캡을 갖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에 예술성과 상업성의 미덕을 적절히 갖춘 영화가 독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성과 상업성은 적대적인 관계이기 보다는 부모, 자식같은 관계라는 점이다. 예술적인 실험을 통해서 발전된 영화의 기법은 상업적인 영화에서 훌륭하게 적용되기도 하고, 상업적인 영화가 영화시장을 지속 발전시켜 나갈때 예술영화도 살아남을 수 있다. 만일 어느 한쪽에서 그 동안 영화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 둘의 관계를 교차해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2) 영화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러시아와 같은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영화는 대중을 계몽시키는 선전,선동의 도구였다. 가깝게 우리나라에서도 반공으로 도배된 영화들이 있었고, 대학교 운동권 영화동아리의 정치적 포지셔닝도 이 지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변화시킨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모는 관객을 변화시키고 그로 인해 세상을 변화시킨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를 보고 패션스타일이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별 대단치 않은 변화부터 한 개인의 가치관의 변화까지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즉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3) 남들이 무엇이라 하든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평론의 혹평을 받았고 그 혹평이 이해는 되지만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다. 송해성 감독의 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서 좋아하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이병헌의 나레이션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좋아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엘리어트는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영화라서 좋아한다. 그렇다. 남들이 무엇이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런 영화들이 한 두편씩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는 영화라도 자신이 좋으면 자신있게 좋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남들이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그 또한 자신있게 이야기 하라.

가끔 영화에 대한 평가가 너무 획일화 되는 듯하여 안타깝다. 좋아하는 이유도 싫어하는 이유도 대부분 똑같다. 영화는 일대다수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매체가 아니라, 일대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매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느낌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절대다수를 따른다. 개인에게도, 영화에도 이러한 획일화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크게 영화를 보는 세 가지 정도의 기준을 이야기 해 봤다. 좋은 영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평가가 모두 의미가 있으니 마음껏 평가하고, 다양하게 이야기 하고, 강하게 주장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글로 적어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라는 것이다. 느끼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영화를 더 다양하게 할 것이고, 더 좋은 영화를 탄생하게 할 것이다.

현재 나는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