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사이코패스 vs 선한 주인공의 대결이라면 스토커는 사이코패스가 두 명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한쪽의 사이코패스가 이제 막 정체성을 찾아가는 10대 소녀라는 점이 차별화, 반전의 수단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삼촌과 사이코패스적인 유전적 성향을 공유하는 10대 소녀가 내면의 느낌과 생각의 혼동 과정을 거치고 결국 동질적인 삼촌을 죽이고 본연의 정체성을 규정, 받아들이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전개 상으로는 사이코패스로서의 정체성이지만 폭넓게 미성년 소년 또는 소녀의 정체성으로 보아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 않을까? 어쩌면 그 시기의 엄청난 혼동에 대한 박찬욱, 엔트워스 밀러의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반전이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주인공 인디아의 내적 심경을 보여주는 화면 구성이 어쩌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로 인해서 이 영화는 서구권 영화들에서 보기 힘든 동양적이고 정적인 미장센을 갖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 정명훈 촬영감독의 영향이 큰 부분인 것도 같다. 하지만 왠지 이미지의 심상에 대한 집착으로 이야기의 얼개가 너무 느슨해져 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반을 넘어가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지면서 몰입감이 높아지지만 중반까지는 이야기 전개의 당위성은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인디아에 대한 현재 정서적 상황에 대한 충실한 서술로 보여지지만 이야기 자체가 너무 없다 보니 몰입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상적인 화면 구성이 존재하고 서구 캐릭터들을 통해 전해지는 동양적인 정서는 꽤 흥미롭지만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들과 최근작인 박쥐에서 보여지던 현학적인 형식과 기호에 심취한 연장선에 있는 듯 해 개인적으로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