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나 로맨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예외로 두어야겠다. 만약 오블리비언이 반전, 액션에 방점을 두었던 영화였다면, 아주 새끈한 디지털의 영역안에서 맴돌았다면 그다지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시작부터 아날로그적인 인트로, 그리고 잭이 기억의 단편들을 모아둔 작은 오두막집과 같은 SF와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실제 SF 블럭버스터로서 이 영화는 그다지 스케일이 큰 편이 못된다. 몇 대의 비행기 몇대의 드론 그리고 유일한 공중전이 스케일이 고작이다. 하지만 비록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메카, 무기 각각의 디자인, 타워의 공간적 구성은 그 디테일이 미려하고 훌륭하다. 비록 그것이 애플의 디바이스들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어도 말이다. 


이 영화의 결론은 조금 충격적이기는 하다. 만약 누군가 당신 연인의 기억을 동일하게 소유하고 그 기억으로 인해 생성된 감정까지 동일하다면 그는 물질적으로 이질적인 존재여도 같은 대상인가? 영혼이 있는 드로이드에서 조금 확장된 기억과 감정까지 복제된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아마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애초에 줄리아의 남편인줄 알았던 잭은 원래 잭의 복제인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정체성은 원래의 잭이다. 그렇다면 그는 원래의 잭인가? 결국 잭은 줄리아를 남기고 죽지만 다시 잭의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다른 복제인간 잭이 줄리아를 찾아오며 이 영화는 끝난다. 로맨틱하게는 상대의 기억과 느낌이 어쩌면 영혼이 동일하다면 같은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조금 섬뜩하기도 하다. (49호 잭이 죽고 52호 잭이 찾아왔다면 적어도 50명의 다른 잭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이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답에 따라 오블리비언의 가장 큰 장점인 아날로그 SF 멜로라는 코드가 미덕일 수도 다소 역겹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전자쪽에 서고 싶다. 그냥 뉴욕거리가 나올때 부터 충분히 좋았다. 

Posted by honeybadger :